고대 창녕지역 묘제의 다양성과 그 의미
The Diversity and Meaning of the Ancient Changnyeong Tomb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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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창녕지역은 낙동강 교통로를 통제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신라, 가야의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공간으로 성장하였다. 창녕지역에는 200기 이상의 고분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중심고분군이 확인된다. 계성고분군과 교동·송현동고분군이 그것이다. 고대 창녕지역에 관한 연구는 가야와 신라의 역학관계에만 집중되었다. 본 글에서는 묘제를 통해 창녕지역 입장에서 주변 문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주체화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했다. 창녕지역에는 목곽묘, 수혈식석곽묘를 비롯하여 日자형 주부곽식 수혈식석곽묘, 횡구식석실묘, 판석조 수혈식석곽묘, 횡혈식석실묘 등 다양한 묘제가 축조된다. 계성지구는 日자형 주부곽식 수혈식석곽묘, 교동지구는 횡구식석실묘가 대표적인 묘제이다. 계성지구의 日자형 주부곽식 수혈식석곽묘는 당시 선진지역이었던 경주·김해·부산지역의 목곽묘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았다. 고령·합천·의령 등지에서 확인되는 주부곽식 묘제는 계성지구 묘제와 관련된다. 교동지구의 횡구식석실묘는 낙동강 상류지역 고분 축조기술을 수용하면서 출현했다. 교동지구의 횡구식석실묘와 판석조 수혈식석곽묘는 창녕과 대구·구미·선산·상주지역과의 교류 관계를 보여준다. 5세기부터 신라, 가야지역에는 고총고분이 출현하면서 거대한 봉분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매장시설이 고안된다. 각지의 지배집단은 이전 시기부터 마련된 네트워크를 통해 고분 축조 정보를 공유하게 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역적인 특성과 정체성이 반영된 묘제를 선택하게된다. 낙동강 연안에 축조되는 각양각색의 묘제는 당시의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준다. 고대 창녕지역 정치체는 ‘비화’, ‘비사벌’ 또는 ‘비자발’로 불렸으며 계성과 교동, 두 개의유력집단을 기반으로 성립되었다. 신라 진흥왕 창녕비에는 2인의 촌주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이각각 계성과 교동의 대표자였을 것이다. 고대 창녕지역 정치체는 낙동강 연안의 다양한 정치체와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강력한 세력으로 군림하였다.
Abstract
The Changnyeong area is located in the middle of the Nakdong river, and was a center of exchange that connected Gaya and Silla, and an important military and transportation hub. Based on these geographical advantages, the ancient Changnyeong area grew into a unique space where the cultures of Silla and Gaya were fused. In the Changnyeong area, two central ancient tombs are identified: Gyeseong tombs, Gyodong and Songhyeondong tombs. In the Changnyeong area, various Tomb style such as Wooden chamber burial, Stone-lined chamber burial and Corridor-chamber tomb are built. A stone-lined chamber with its internal space divided by a wall. Changnyeong’s distinctive form of the corridor-chamber tomb that has a side opening Since the 5th century, various burial facilities have been devised to maintain a huge burial mound as large mounded tombs have emerged in Silla and Gaya areas. Dominant groups in each region share information on ancient tomb construction through networks established from the previous period and choose a theme that reflects regional characteristics and identity through trial and error. Various tombs built in the Changnyeong area show these circumstances at that time. The ancient political organization in Changnyeong was called Bisabeol(比斯伐) and was established based on two influential groups, Gyeseong and Gyodong. The political bodies of the Changnyeong area were dominated by powerful forces, forming networks with various political bodies along the Nakdong 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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