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시기 영남유림의 서양문명 인식과 서양철학 연구의 양상 -이인재(李寅梓: 1870~1929)와 조긍섭(曺兢燮: 1873~1933)의 경우-
A Study on Recognition about Western Culture and Philosophy by Confucians of Yeongnam in Colonial Period -Focusing on Lee In-Jae and Cho Geung-Seob-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인재와 조긍섭은 조선 말기에서 식민지시기를 살다간 영남의 퇴계학맥을 잇는 도학자였지만 서양문명 자체를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또 다른 타자로서의 서양문명을 인정하고, 도학적 가치 안에도 그에 못지않은 발전적 요소들이 있음을 밝히려 하였다. 이들은 서양의 정치제도와 철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이인재는 고대그리스철학을 서양문명의 바탕으로 보고, 서양 근대문명의 발전이 그리스철학의 부흥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인재의 연구 목적은 서양철학 수용이 아니라 ‘천리 본연의 오묘함’으로 돌이켜, ‘함께 크게 바른 데로 돌아가고자’하는 도학적 대안제시에 있었다. 조긍섭은 사회진화론에 특히 비판적이었다. 서양문명은 힘과 공리, 경쟁의 논리로 일관된다는 것이다. 사회진화론이 바탕이 된 서양 근대문명을 패도로 인식하고, 왕도의 가치를 회복할 것을 역설한다. 현재적 시각에서는 이 둘의 서양철학 이해와 논리에 오류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는 서양문명과 철학에 대한 학술적 연구와 수용이 목적이 아니라, 비판을 통한 도학적 대안제시가 목적이었다. 즉 외래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도 추종도 아닌 위기에 처한 조선지식인의 또 다른 모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의 시도는 정치적 기득권층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도학적 가치관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Abstract
Lee In-Jae and Jo Geung-Seob, who were Confucians of Yeongnam, reflectively contemplated the social situation of Joseon, and studied western civilization in order to look for reasons why Japan had become so strong after accepting western civilization. Regarding that the western political and social system was based on philosophies and ideas, they concentrated their concerns on that. I studied how they assessed western philosophies, ideas, and what their identity was as Confucian scholars(道學者). Considering that their research attitude was somewhat out of the bounds of conventional worship of the powerful, I mainly analyzed [Treatise on Ancient Greek Philosophy(古代希臘哲學攷辨)] of Lee In-Jae, [Gon-eon(困言)] of Jo Geung-Seob for examining details of the contents. Lee In-jae mainly studied ancient greek philosophy. This is because ancient greek philosophy was thought to be the origin of western civilization. Jo Geung-Seob studied mainly Western modern thought such as social evolution theory. But there was a limit to the study because there was a lack of data. Nevertheless these studies had important implications. This is because despite being the most conservative Confucians of Yeongnam(嶺南) they studied the ‘barbarian’ of the ‘West’ not rejecting it. In conclusion their purpose was not to accept western civilization but to reconfirm the value of Confucianism.
참고문헌 (20)
- "俛宇集"
- "省窩文集" (1995), 경인문화사
- "深齋集" (1980), 경문사
- "巖棲集"
- "飮氷室全集" (1970), 대북 문화도서공사
- 강동욱, "韓末 嶺南學脈과 深齋의 役割", 영남학, (11), pp.7~43 (2007), 영남문화연구원[DOI]
- 김낙진, "曺兢燮의 共和主義 비판과 朱子學적 근거 梁啓超 비판을 중심으로", 南冥學硏究, (33), pp.261~294 (2012), 경남문화연구원
- 김종석, "한말 영남 유학계의 동향 : 서양사상의 섭취 수용과 영남 유학계의 동향 한말 영남 유학자들의 신학 수용 자세" (1998),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김종석, "성와 이인재의 서구수용론과 신학에의 관심", 한국학논총, 26 (1999),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 김종석, "19·20세기 초 영남 퇴계학파의 사상적 대응에 관한 철학적 고찰", 철학논총, 20 (2000), 새한철학회
- 김종석, "성와 이인재의 유교개혁사상", 영남학, (43), pp.133~159 (2008), 퇴계연구소
- 금장태, "조선 후기의 유학사상" (1998), 서울대학교출판부
- 금장태, "한국 근대의 유학사상" (1999), 서울대학교출판부
- 금장태, "유학근백년2 -영남계열의 도학" (2004), 한국학술정보
-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암서집" (2014), 도서출판 점필재
- 신승훈, "深齋 曺兢燮의 學問方向과 經學에 대한 一考", 영남학, (11), pp.123~149 (2007), 영남문화연구원[DOI]
- 이현구, "개화기 유학자와 계몽운동가들의 서양철학 수용", 철학사상, 4 (1994),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이현구, "동서윤리론의 기저 비교와 융합 가능성 모색-성와 이인재의 『희랍고대철학고변』 중심으로-", 시대와 철학, 19(1), pp.489~509 (2008),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임종진, "深齋 曺兢燮의 修養論", 영남학, (11), pp.45~72 (2007), 영남문화연구원[DOI]
- 천병돈, "深齋 曺兢燮의 ‘格物’설 연구 - 왕양명 ‘격물’설과의 비교를 겸해서 -", 양명학, (39), pp.145~169 (2014), 한국양명학회[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