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지역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묘지로 본 인구(人口)의 변화
A Study on the Population's Transition by the Dwelling and the Graveyard at Bronze Age in Gyeongsan(慶山) Area
2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경산지역 청동기시대 유적을 크게 6개의 군집으로 나누었으며, 주거지의 노지와 바닥 면적을 이용하여 각 시기별로 거주자 수를 추정하였다. 그 결과를 가지고 각 시대별 연평균 인구증가율과 1개 주거지를 1가구로 볼 때 각 시대별 가구 구성원수 그리고 묘지와 가구ㆍ인구를 비교하였다. 그 결과 경산지역에서 조기와 후기 등 문화가 변동될 때 인구수가 가장 작았으며, 묘지수는 1기이거나 없었다. 반면 전기와 중기 등 안정적인 시기에는 인구가 늘어났으며, 특히 현재까지 발굴조사 결과 중기에는 약 2,500명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1가구 구성원은 문화변동이 있던 시기(조기와 후기)는 높은 편이지만, 안정적인 시기(전기와 중기)는 낮은 편에 속한다. 안정적인 시기에도 가장 인구가 많았던 곳(중서군)은 가구구성원이 많은 편에 속하며, 종합하여 볼 때 가구를 중심으로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북서군은 안정적인 시기(중기)에 인구가 다른 곳보다 줄어들었으나 묘지는 늘어났다. 이는 인구증가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보아 혼인이나 이주 등에 제약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주거지와 묘지를 통해 본 경산지역 청동기시대는 분절사회로 짐작된다.
Abstract
We do a classification the 6th-group at bronze age in Gyeongsan (慶山) area and the population of 4-period at bronze age calculate on the number of hearth and the dwelling floor space. We search the outcome for the population 4-period, the estimation of the annual rate of population growth, the number of households and compared the household and the population to the graveyard. The result of this method, the population is of a small size at the time of culture change-period such as the early and the late period on 1 graveyard or none. However the stable period - the former and the middle period - the population is on the increase and in particular the middle period it is the numerous of about 2,500 persons. In the number of households the early and the late period is the higher than the former and the middle period, anyway in the middle period the most much population's site is a higher. We estimate to live through the household. In case of the middle period at north-west group of population dwindle away into a smaller than the other sites but the group go on increasing in graveyard. The north-west group on the middle period show the estimation of the annual rate of population growth to the other group and it is control to marriage or migration.
참고문헌 (69)
- 강봉원, "인구압력과 전쟁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 신라를 중심으로 -", 신라문화, (21), pp.127~150 (2003), 신라문화연구소
- 강봉원, "한국고고학의 일 방향" (2008), 학연문화사
- 강봉원, "한반도 청동기시대 마제석촉의 무기적 기능에 관한 역사․고고학적 고찰", 선사와 고대, (38), pp.89~118 (2013), 한국고대학회[DOI]
-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신설구역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음양리ㆍ사리ㆍ수성리ㆍ현내리ㆍ다산리-,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2002)
- 하양 대학리ㆍ와촌 동강리 유적,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2005)
- 慶山 新閒里 聚落 緪蹟,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2007)
- 慶山 山陽里 緪蹟,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2009)
- 대구 신서혁신도시 B-3북구역 유적,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 (2011)
-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대구 각산동 유적", ~ (2012)
- 김광명, "금호강유역 초기사회의 형성" (2015), 학연문화사
- 김권구, "청동기시대 영남지역의 농경사회" (2005), 학연문화사
- 김권구, "청동기시대 시지지역의 마을과 무덤, 고대마을, 시지", 국립대구박물관, ~ (2016)
- 김권구,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4. 분묘와 의례" (2017), 서경문화사
- 김권구,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3. 취락" (2014), 서경문화사
- 김병섭,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2. 편년" (2016), 서경문화사
- 朴榮九, "東海岸地域 靑銅器時代 무덤의 變遷", 韓國靑銅器學報, 9 (2011), 한국청동기학회
- 방선지, "경북지역 청동기시대 무덤" (2016), 학연문화사
- Patterson, Thomas. C., "고고학이론 입문" (1991), 학연문화사
-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조선고고학개요" (1977), 과학백과사전출판사
- 慶山 慶里 440-5番地 緪蹟, "삼한문화재연구원", ~ (2012)
- 慶山 佳野里 376-1番地 緪蹟, "삼한문화재연구원", ~ (2012)
- 慶山 中山洞 160-1番地 緪蹟, "성림문화재연구원", ~ (2011)
- 손준호, "石器 組成比를 통해 본 靑銅器時代 生計와 社會經濟", 韓國靑銅器學報, 3 (2008), 한국청동기학회
- 손준호, "청동기시대의 고고학5. 도구론" (2014), 서경문화사
- 신영애, "경북지역 청동기시대 무덤" (2016), 학연문화사
- 안승모, "선사농경 연구의 새로운 동향" (2009), 사회평론
- 안재호,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2. 편년" (2016), 서경문화사
- 시지의 문화 유적Ⅰ, "영남대학교박물관", ~ (1999)
- 대구 괴전동 유적, "영남대학교박물관", ~ (2004)
- 대구 욱수동 생활유적, "영남대학교박물관", ~ (2004)
- 대구 동내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2)
- 慶山 三省里 665番地 緪蹟,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3)
- 대구 가천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4)
- 대구 시지동 60-1번지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4)
- 대구 욱수동 128번지 생활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4)
- 대구 욱수동 134번지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4)
- 慶山 佳野里 緪蹟,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5)
- 慶山 麻谷里 緪蹟,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5)
- 대구-부산간 고속도로 공사 구간 내 慶山 三省里 緪蹟,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5)
- 대구 사월동 400번지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6)
- 대구 매호동 1008번지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 ~ (2009)
- 慶山 西部里 451番地 緪蹟, "영남문화재연구원", ~ (2011)
- 慶山 玉山洞 300番地 緪蹟, "영남문화재연구원", ~ (2011)
- 유병록,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5. 도구론" (2014), 서경문화사
- 유병록, "대구지역 신천일대의 주거와 취락", 영남문화재연구원, 28 (2015), 영남문화재연구원
- 류지환, "대구 진천천 일대 청동기시대 취락의 전개과정", 한국상고사학보, 78(78), pp.23~52 (2012), 한국상고사학회
- 윤호필, "靑銅器時代 墓域支石墓에 관한 硏究", 경남연구, 1 (2009), 경남발전연구원
- 윤호필, "청동기시대 지석묘의 축조배경과 상징성", 한국청동기학보, (21), pp.80~106 (2017), 한국청동기학회[DOI]
- 윤호필,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4. 분묘와 의례" (2017), 서경문화사
- 이석범, "磨製石鏃을 통한 嶺南地域住居址의 編年", 한국청동기학보, (10), pp.22~60 (2012), 한국청동기학회
- 이성주, "경북지역 청동기시대 무덤" (2016), 학연문화사
- 이수정, "청동기시대 주거 변화에 대한 연구", 영남문화재연구원, 28 (2015), 영남문화재연구원
- 이영문,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4. 분묘와 의례" (2017), 서경문화사
- 이청규,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5. 도구론" (2014), 서경문화사
- 이형원,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2. 편년" (2016), 서경문화사
- 이희준, "대구 지역 古代 政治體의 형성과 변천", 영남고고학, 26 (2000), 영남고고학회
- 李 熙 濬, "경산 지역 고대 정치체의 성립과 변천", 영남고고학, (34), pp.1~3 (2004), 영남고고학회
- Renfrew, Colin, "현대 고고학의 이해" (2006), ㈜사회평론
- 조미애, "경북지역 청동기시대 무덤" (2016), 학연문화사
- 천선행, "청동기시대의 고고학 5. 도구론" (2014), 서경문화사
- 하진호, "금호강유역 초기사회의 형성" (2015), 학연문화사
- 경산 옥산동 29번지 건물신축 부지 내 유적,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2008)
- 慶山 玉谷洞 緪蹟Ⅰ~Ⅳ,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2009)
- 대구 신서동 유적Ⅰ~Ⅴ,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2012)
- 2014 소규모 발굴조사보고서Ⅷ 대구ㆍ경북1, "한국문화재재단", ~ (2016)
- 慶山 內里里 緪蹟, "한빛문화재연구원", ~ (2011)
- 황창한, "영남지역 청동기시대 석제무기", 한국청동기학보, (13), pp.44~70 (2013), 한국청동기학회
- Chamberlain, Andrew, "Demography in Archaeology, Cambridge Manuals in Archaeology" (2006), Cambridge University Press
- Hassan, Fekri. A., "Demographic Archaeology", Advances in Archaeoolgical Method and Theory, 1 (19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