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형산강 유역의 인구추이에 대한 연구 -고고자료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Population Changes in the Hyeongsan River Basin for the Bronze Age - Centered on archaeological material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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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최근 형산강 유역이라는 공간 범위에서 청동기시대 취락 조사자료가 축적됨에 따라 취락 자료를 중심으로 시기별·지역별 인구를 추정해보고 당시의 인구추이와 사회구조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청동기시대 형산강 유역 인구추정에 있어서 1인이 필요한 주거 면적을 5㎡의 수치로 추정했다. 그 결과 전기의 인구를 100%로 산정하여 인구추이를 지구별로 살펴보면 청동기시대 후기에는 청동기시대 전기 인구 규모의 40.7%로 60% 정도 감소한 양상을 보인다. 인구추정 결과로 본 인구분포 비율은 전기에서 후기로 가면서 60% 정도 감소하였으나 경주 중심권과 안강 방면 북부권의 경우에는 전기보다 후기의 인구가 늘어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경주중심권으로 취락들이 통합되어 단일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추정되며 취락의 구조가 커짐을 뜻한다. 이러한 경주 중심권으로의 인구증가는 청동기시대 후기 읍락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놓여지고 있는 모습이다. 경주중심권으로 인구가 모여드는 인구집중을 토대로 하면서 대외교류 증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초기철기시대에 읍락을 중심으로 한 기초 정치체가 형성되고 더 통합되어 지역정치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This thesis aims to estimate the population sizes over time each region had during the Bronze Age on the basis of settlement data in the Hyeongsan River and aims to trace the population trends and the social structures as the settlement data that have been accumulated recently. In estimating the population of the Hyeongsan River basin during the Bronze Age, five square meters has been used as the spatial size a person needs according to the generally used average floor size per a person. According to the population estimation results, the population size of the Late Bronze Age turns out 40.7% of the population size of the Early Bronze Age. Although the Late Bronze Age witnessed 60% decrease in the population size of the Early Bronze Age in the Hyeongsan River basin, there had been some variations in the basin. That is, there had been the population increases in the central Gyeongju region and the northern Gyeongju region including the Ahngang basin from the Early Bronze Age to the Late Bronze Age, which is an interesting population trend. It is considered that this population increase in the two areas might be related to the integration of settlements including population nucleation by the emerging center located at Gyeongju area. In addition, it might mean that the settlement structures got bigger and more complex. This phenomenon the population increase in the central Gyeongju area might be the dawn of the emergence of the regional polity consisting of the village clusters or settlement networks called 'euprak' because the population increase could stimulate not only diverse social integrations but also long distance tra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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