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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 영남 무관 노상추의 지역 정체성과 북방 관직활동

No Sangchu’s regional identity and official activities in the Northen regions during the reign of King Chŏng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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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정조대 出仕한 노상추는 영남 남인의 사족 출신으로 원래는 문관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숙종대 환국 과정에서 노론에게 ‘黨禍’를 입은 집안 내력 및 영남 남인에 대한 정치적·지역적인 홀대로 인해 진로를 수정하여 무과로 전향하였다. 노론 주도의 정국에서 노상추는 무과 급제와 宣薦, 그리고 벼슬을 얻기 위해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는 정조 11년(1787) 함경도 갑산의 진동만호로 발령받았을 때 세력이 없어 쫓겨나는 것이라고 단언하였는데, 그 저변에는 변방 갑산을 오랑캐의 땅으로 여긴 지역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남 남인으로 세태를 원망하던 노상추는 정조와의 만남을 통해 관료 생활의 획기적인 전기를 맞았다. 탕평책을 추진한 정조의 特旨로 정3품의 평안도 삭주부사에 임명된 노상추는 尙武와 농본 위주의 목민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목민 활동의 과정에서 이웃한 고을의 수령들과 불화가 있기도 하였다. 이는 노상추가 견지한 ‘영남인 무관’으로서의 지역 인식과 정체성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노상추는 삭주부사에서 파직당했다. 이후 영남 남인을 견인하던 정조가 승하하면서 功名을 이루고자 했던 노상추의 노력도 무산되고 말았다.

Abstract

No Sangch’u, a confucian scholar from the Southern faction in Yŏngnam area, entered government service in the reign of King Chŏngjo and originally intended to be a civil officer(文官). However, due to the fact that his family had suffered in the course of Hwan’guk (換局, change of government) during reign of King Sukjong, and also the fact that the Nam party from Yŏngnam area was politically neglected and regionally discriminated, he changed his course and became a military officer(武官). In a political state with Noron taking the lead, No Sangch’u had to endure extremely difficult situations. When he was appointed as Chindongmanho(鎭東萬戶) of Kapsan, Hamgyŏng province in the year of Chŏngjo 11 (1787), he saw it as banishment due to poor power, which was also a result of perceiving his new post as barbaric grounds. An encounter with king Chŏngjo led to a turning point in No Sangch’u’s career. As a special royal order of the king, No Sangch’u was promoted as governor of Sakchu. While his government activities were focused on encouraging military spirits and agricultural development, he also experienced unfortunate dissonance with neighboring governors. This was an outcome of No Sangch’u’s regional perception and identity as a military officer of Yŏngnam origin. As a result of this incident, No Sangch’u was dismissed from Sakchu. The death of king Chŏngjo eventually rendered his efforts in achieving accomplishments to 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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