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남 ‘叛逆鄕’담론의 실상과 허상
The reality and the illusion of the 18th century Yeongnam “Rebellion” Disco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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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에서는 영남차별론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숙종 20년(1694) 갑술환국, 영조 4년(1728) 무신란, 순조 원년(1801) 신유박해 등이 남인이 중앙정계에서 퇴출되는 계기로 제시되곤 한다. 그런데 경상도는 조선시대 500년간 과거급제자가 서울을 제외하면 부동의 1위이다. 또한 과거급제에 그치지 않고 출사로 이어진 비율도 높았으며 그중 고위직 비중도 적지 않았다. 남인이 때때로 탄압을 받은 적은 있으나 영남인이 그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영남 차별론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상대적인 기억의 왜곡 현상이다. 여러 정치사건에도 불구하고 실제 영남 출사자가 감소하거나 중단되지 않았다. 심지어 세도정치기나 고종연간조차 영남인의 출사는 증가하였다. 이는 차별론의 시선과 전혀 다른 현실이다. 둘째, 과거 급제자 숫자의 일시적 변동이다. 18세기 영남 급제자 일부가 단기간에 감소하였고, 18-19세기 충청도와 평안도 숫자가 일시적으로 경상도를 앞서는 시점이 도래했다. 하지만 이 역시 남인 등용책과 더불어 기호지방 출사가 늘어났기 때문이었고 서북인 등용확대는 영남인 우대조치와 연동되어 등장하였으므로 영남차별과는 무관하였다. 오히려 공평한 인사정책과 지역균형 정책이 역설적으로 영남인 진출자 감소를 가져왔다. 셋째, 현재적 관점에서 지역차별을 논하면서 과거 역사에 투영하는 방식이다. 주로 지방의 정치권에서 선거철과 관련하여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결과적으로 경상도가 지역차별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명현을 가장 많이 배출하였고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지역이었다. 단지 서울을 꿈꾸기 때문에 욕망에 비례하여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Abstract
In Gyeongsang Province, the theory of discrimination in Yeongnam is being accepted as a historical fact. Several political events are often suggested as an opportunity for Southern party to be expelled from the political world of the capital. For instance, Gabsul Regime Change in 1694, Musin Rebellion in 1728, Sinyu Persecution of Catholics in 1801 etc. However, Gyeongsang Province has the largest number of successful applicants for the highest-level state examination to recruit ranking officials in the history of the Joseon Dynasty for 500 years excluding Seoul. What’s more, Those belonging to Southern party were sometimes suppressed, but those from Gyeongsang Province were not targeted. Then, why did the theory of the Yeongnam discrimination arise? First, it is a relative memory distortion phenomenon. Despite various political events, the number of successful applicants in Yeongnam did not actually decrease or stop. Even during the power politics and the reign of King Gojong, the number of Yeongnam people entering government posts increased. This is a completely different reality from the view of discrimination. Second, the number of Yeongnam people who passed temporarily fluctuated. In the 18th century, some of successful candidate for Yeongnam decreased briefly. And from the 18th to the 19th century, the number of successful candidate for Chungcheong and Pyeongan provinces temporarily surpassed that of Gyeongsang Province. But this was also due to increased travel to the region along with other people's regulations. However, this was also due to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government posts in Gyeonggi and Hoseo Province along with the use of Southern party. And the expansion of the use of Northwesterners was related to the preferential treatment of Yeongnam people, so it had nothing to do with the discrimination in Yeongnam. Rather, fair personnel policies and balanced regional policies have ironically reduced the number of Yeongnam people entering government posts. Third, it is a way of projecting the regional discrimination from a current perspective on past history. This is a frequent phenomenon in local political circles, mainly in relation to the election season. As a result, Gyeongsang Province has rarely suffered regional discrimination. Yeongnam produced the most famous talents and was a very economically wealthy area. Just because they dream of Seoul, they feel thirsty in proportion to their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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