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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물 유입에 따른 정재학파와 미토학파의 사상적 대응 비교

Comparison of Jeongjae School and Mito School Philosophical Responses on the Aquisition of Wester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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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명청교체 이후 조선과 일본은 청 중심의 국제관계 속에서 자국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게 ‘중화문화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신념은 중요한 가치와 자부심이었으며, 그 수호는 역사적 사명감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중화를 유교문화가 아닌 일본 그 자체로 보는 자국 중심적인 해석이 도출되었다. 서구 문물 유입에 대한 정재학파와 미토학파의 사상적 대응은 유교적 사회 질서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정재학파는 천주교의 위협 속에서 유교문화의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氣에 우선하는 理의 능동성을 강조하였다. 미토학파는 신도와 결합한 일본 중심의 중화사상의 영향으로 ‘보편적 원리로 인식되던 理의 부재’현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氣의 불변성・고정성을 강조하였다. 한편 두 학파는 모두 기독교라는 서양세력의 사회적 침투를 경계하며, 서양을 열등한 위치에 두고 이를 배척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였다. 그러나 정재학파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이념적 측면에서 척사(斥邪)를 주장하였고, 유교 사회의 수호를 강조하였다. 미토학파는 일본의 존립을 위하여 천황을 정점에 두고 기독교를 대신할 새로운 체제 유지 사상을 확립하였다. 나아가 일본의 존립을 위해서는 서양의 기술 및 문화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화사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전개는 19세기 이후 양국의 역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Abstract

The transition from Ming to Qing witnessed the barbarians(夷狄) replace the Han Chinese and become the Hwa(華) of China. This event was shocking, overturning the old ideas of Sinocentrism(中華思想). Both Joseon and Japan had contemplations over the nature of Sinocentrism and started to re-establish their identities in international relations around Qing. In Joseon, the Confucian culture was based on the idea that the Han Chinese were the only successor of Sinocentrism, which represented the value and pride that transcended states and people. Its transmission represented a historical sense of mission. In Japan, however, Confucianism remained at the level of social enlightenment ideology in the moral aspect. Thus, they had an interpretation around their own state that Sinocentrism was Japan itself rather than Confucian culture. Jeongjae School and Mito School developed completely different patterns of ideological reactions to the external crisis due to their differences in the perception of Sinocentrism or Confucian social order they tried to keep. The first difference emerged in the perception of Lee(理) between them. The Jeongjae School of Yeongnam put an emphasis on the superiority and absoluteness of Lee to safeguard the tradition of Confucian culture in the middle of ideological threats represented by the Catholic Church. The Mito School, on the other hand, discussed the deconstruction of Lee under the influence of Japan-centered Sinocentrism combined with the believers. Their emphasis was on the invariability and fixability of Gi. Regarding the Confucian culture as a symbol of Sinocentrism, Jeongjae School developed a movement of expelling wickedness in the ideological aspect of transcending states and people and insisted on the protection of Confucian society. The Mito School , however, showed ideological responses to find the top priority in the protection of Japan's existence and national interest based on the flexible Hwai theory. These differences in the perception of Sinocentrism and its changing processes after Qing replaced Ming had huge impacts on the history of both st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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