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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창립단원 문제와 제1차 국내거사기획의 실패 전말 -13인설 재검토와 ‘구영필 문제’의 숙고를 중심으로-

Reflections on the Intricate Failure of Eui’yoldan in the First-time Project of Domestic Bombing Undertaking : Focused on the Actual Number of its Founding Members and on the Question of Goo Yeong-Pil’s Betray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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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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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의열단의 창단 후 첫 기획인 국내 일제기관 투탄거사가 거단적으로 추진되었으나 끝내 결행되지 못하고 만 경위를 세세히 추적·천착해본 작업의 결과물이다. 우선은 그 추진과정 참여자의 범위와 각인의 역할 및 신원을 재확인하고 판별해가던 중에 창립단원의 명단과 인원이 『약산과 의열단』에서 비롯된 통설과 다를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다수의 1·2차 자료를 참조하며 재검토해봄에 의해 종래의 ‘13인’ 설 명단 속의 3인(배동선·한봉인·권준)은 창립단원일 수 없었음과 나머지 10인만 해당됨을 논증하고 부수적 의문점들도 해결하였다. 또한 초대 단장(‘의백’)은 우여곡절 끝에 황상규가 아닌 김원봉이 맡는 것으로 낙착되었음을 해명하여, 저간의 일부 인식혼란을 불식하면서 통설을 확정지었다. 의열단의 제1차 국내거사 추진과정과 그 결말을 세부사실들의 순차적 배치와 새 자료의 활용에 의해 재구성하고 숙고해봄으로써 도출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 밀반입 무기의 보관책임자이던 이일몽(이수택)의 이상행동―매번 이유를 바꿔가며 끝끝내 폭탄을 내주지 않은―이 거사결행에 거듭 제동을 걸어 결국 미수에 그치고 말게 하였다. 둘째, 밀입국 단원들의 연속피검이 일부 단원의 부탁을 받은 김진규·안태익의 밀고에 의한 것이었다는 수사책임자 김태석의 반민특위 진술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분석해보면 허점이 많고 진상은폐와 독립운동 모독의 의도를 내장시킨 허위진술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김태석이 폭탄 전부 압수와 거사저지 목적의 공작을 벌여가는 데 구영필이 동원되어 적극 협력했고 이일몽도 끌어들여져 보조했다. 나아가 구영필이나 그 휘하 그룹의 누군가가 거사계획 자체를 진즉 밀고했을 가능성이 부분적으로 짚어지면서 앞으로 더 추급하고 해명해야 할 문제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Abstract

This paper is the result of inquiry into the details of the case that the Eui’yoldan’s undertaking of bombing the domestic colonial institutions as the first-time action project immediately after its founding completely failed at the end in spite of propelling on an entirely organizational scale. The author demonstrates in the first place that three persons(Bae Dong-seon, Han Bong-in and Kwon Jun) among the hitherto name-list of 13 founders of Eui’yoldan must not have really been the founding members, and that only the rest 10 could have been included in the list, and goes ahead to solve the collateral questions. That demonstration and solution was possible by referring to and reexamining many of the first and second source of materials, and through reaffirming and distinguishing the boundary of the participants in the propelling process along with everyone’s role and identity. Main points found and confirmed by arranging the detailed facts one by one along to the time sequence and by reconstructing the entire process of the undertaking propelling and its unexpected results are as follows. Firstly, there were certainly curious acts by Lee Il-mong and Bae Joong-se of refusing stubbornly to hand over the bombs under custody and keeping to action group, with reasons changed each time, which consequently put on the brakes the final step and made it not to be accomplished. Secondly, Kim Tae-seok’s statement at the Special Committee for the Persecution of the Anti-national Actors in 1949 that the successive arrest of the founding members of Eui’yoldan in 1920 had been due to a secret information by Kim Jin-kyu and Ahn Tae-ick was, in author’s judgement, untrue one which had several loopholes although sounding plausible and involved some intention of concealing the truth of the incident, furthermore defaming the national independence movement. Thirdly and finally, Goo Yeong-Pil was mobilized by Kim Tae-seok and he collaborated actively for the latter’s operation for the purpose of both seizing all the bombs and impeding the undertaking, and Lee Il-mong was also drawn into it and helped. There remains some additional questions which must be followed up and explic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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