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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신익희의 독립운동단체 결성과 통일전선운동

In the 1930s, Ik-hee Shin’s Foundation of the an Independent Movement Group and the Unification Front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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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1930년대 한국독립운동을 주도해 나간 것은 중국 관내의 독립운동세력이었다. 중일전쟁 이후 독립운동계는 ‘이당치국(以黨治國)’을 통한 독립운동 방략을 모색하였다. 신익희는 위유런(于右任)의 도움으로 난징의 국민당 정부에서 근무할 때,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기회로 처음으로 한국혁명당을 창당하였다. 이 단체는 난경에서 활동하던 다양한 이념을 가진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신익희는 이를 기반으로 1932년 11월 여러 독립운동 단체와 함께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결성하고, 지청천이 이끄는 만주 한국독립당의 합당을 추진하여 신한독립당을 새롭게 출범시킨 뒤 교섭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그는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대표대회를 통해 ‘단일대동맹’을 결성하고자 하였지만, 각기 통합방식을 두고 힘겨루기하면서 그러한 구상은 지지부진하였다. 그런 가운데 1935년 7월 그는 신한독립당의 대표로서 의열단·한국독립당·신한독립당·조선혁명당·대한독립당 등을 하나로 묶어 민족혁명당을 결성하는데 힘을 보탰다. 그는 민족혁명당의 중앙집행위원으로서 당내의 의견 대립을 중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민족혁명당은 상하이 한국독립당과의 당의·당강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였고 임시정부의 존폐 문제를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여 결국 일부 인사가 탈당하면서 위상은 예전만 못했다. 그런데도 신익희는 민족혁명당에 남아 김원봉과 함께 활동하면서 1937년 11월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 계열 인사들과 함께 조선민족전선연맹을 결성하였다. 이후 그는 1939년 8월 사천성 기강에서 좌우익 세력을 통합하려는 ‘7당통일회의’에 참가하였다. 통일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조직 방식을 두고 논쟁이 격렬해지자 신익희는 회의에서 퇴장하였고, 결국 통일전선운동은 결실을 얻지 못하였다. 신익희는 1930년대 한국독립운동계의 숙원이었던 정당의 통일전선운동에 누구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아마 세 차례의 통합운동에 모두 참여한 것은 신익희가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신익희는 이를 주도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통합전선운동이 당 대 당 결합이었기 때문에 그만큼의 자신의 세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규모의 인원과 군사를 확보해야 했고 재정 또한 모자람이 없어야 했지만, 그는 이러한 요인들을 충족하지 못했다.

Abstract

In the 1930s, it was the independence movements within the Chinese jurisdiction that led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Especially, after the Sino-Japanese War, they sought an independence movement strategy through “the stagnation through the formation of the National Unique Party(以黨治國)”. Then Ik-hee Shin founded the Korean Revolutionary Party through the Manchurian Incident in September 1931 while working for the Nationalist Party government in Nanjing with the help of Yu Youren(于右任). Shin Ik-hee formed the Korea-Japan Front Unification Alliance in November 1932 with organizations such as the Korean Independence Party etc. Taking this opportunity, he promoted the joint party of the Korean National Party, newly launched the Shinhan Independence Party. Since then, he attempted to form a “one-to-one alliance” through the Korea-to-Japan Front Unification Alliance Congress, but the idea was sluggish as each competed for the integration method. Since then, he has tried to form a “single alliance” through Korea’s unification alliance with Japan tournament, but such a concept has been slowly progressing while comparing the strengths of each with an integrated method. Meanwhile, in July 1935, he participated in the formation of the National Revolutionary Party, which is highly regarded as a united front. However, the National Revolutionary Party has not overcome the differences in the party principle and party platform. In the end, several people withdrew from it, its status was lost. Nevertheless, Ik-hee Shin remained at the National Revolutionary Party and worked with Kim Won-bong. After that, in November 1937, he formed the Korean National Front Alliance with communist and anarchist family under the National Revolutionary Party as the parent. After that, the “7-Party Unified Conference” was held in Qijiang, Sichuan Province in August 1939, and the left-right unification movement was developed. The unification conference proceeded smoothly, but the debate over the organizational method intensified, and he left the conference. In the end, the unification front movement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did not come to fruition. Shin Ik-hee showed as much activity as anyone in the party’s unification front movement, which was the longing for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1930s. However, Ik-hee Shin seems to have failed to lead this. Since the Unified Front Movement was a party-to-party union, he had to have that much power, but he couldn’t. In order to exert influence, he had to secure the right size of personnel and troops, and his finances had to be low, but he did not meet these fac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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