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40년대 申基彦의 在中독립운동
The Study on the Shin Ki-Un(Refound Shin)’s Independence Activities in Main China during the 1930~1940’s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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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을 전후로 하여 많은 한인청년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들은 1930년대 중반부터 독립운동의 실무를 맡으며, 한인독립운동진영의 ‘중간간부’로 성장한다. 신기언 역시 그들 중의 한명으로 1920년대 후반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과 남경에서 당대의 독립운동가들과 교우하며, 독립운동가로 성장한 인물이다. 따라서 이 글은 신기언의 활동에 초점을 맞춰 1930~40년대 재중한인독립운동 세력의 모습과 특징을 살피고자 했다. 신기언은 경북 의성 출생이며, 중국 국민당이 설립한 중앙정치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혁명당과 신한민주당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특히 신기언은 임시정부의 단파방송 아나운서와 미주 『독립』의 중경특파원으로서 중국 관내지역에서 민족운동의 소식을 알리고 방향을 제시하는 언론운동을 이어나간 인물이었다. 또한 신기언은 중국 관내지역에서 이른바 ‘제3의 세력’을 만들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비록 ‘제3의 세력’을 얻고자 한 이들의 노력은 실패했지만 한국혁명청년단과 조선민족당 해외전권위원회에서 신기언과 그 외 젊은 한인청년들의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 진영 내에 세대갈등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신기언은 독립운동 중에 ‘군사활동의 강화 및 행동의 통일’을 강조했고, 임시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신기언의 ‘군사활동 및 행동의 통일’이라는 대명제는 1920년대 후반 한인독립운동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독립운동 기간 동안 그가 끊임없이 주장했던 내용이다. 특히 ‘행동의 통일’이라는 명제는 신한민주당 창당과 해방 후 민족자주연맹 등의 활동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처럼 신기언은 중국 관내지역의 ‘중간간부’로써 ‘군사활동 및 행동의 통일’을 강조하며 자신의 세력을 갖고자 노력한 인물이었다. 비록 그는 자신만의 세력을 얻지 못했지만 그를 통해 한인독립운동의 다양한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언론활동이 중국 관내지역에서 독립운동 방략 중의 하나로써 ‘외교’와 ‘군사’활동 이외에 다양한 독립운동 방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bstract
Many Korean youth went over the China before and after in 1930’s. Their aim placed on Korean Independence. They had participated in parties and groups for Korean Independence, charged of administrative works here, grown up as senior executive. Shin Ki-Un who had been used “Refound Shin” as english name get across China, had a large acquaintance with Korean Independence group in Beijing and Nanking. Through this process, he had also become a senior executive. This paper explored character and actual state on Korean independence group in China during the 1930~40’s by Reound Shin’s activities. He was born in Uiseong county(義城郡), Keong Sang province(慶尙北道), studied at the Central Political Institute(College) established by the Kuomintang Party. After graduated from this institute, had been strived for Korean independence in the Korean National Revolutionary Party and the New Democratic Party. particularly served as a anchor of shortwave broadcasting operating by Koran Provisional Government and correspondent in Chungging, China of Korean Independence Newspaper Company in Los Angeles. Through these press movement, had been informed actuality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in Main China, proposed new direction for independence movement to Korean-American Society in U.S.A. He loyal to build ‘the third zone(group)’ between nationalist typical to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and socialist of the Korean Revolutionary Party. These attempt His endeavor was aroused from generation conflict. In order words, The young generation with Refound Shin had obvious distinction about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policy. Their effort failed but had given a fresh impetus to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He had been sought to reinforce military activity and united action for Korean liberation. His policy line was output by intercourse between Korean Independence crusaders in China during 1920’s late, repulsion toward the Provisional Government for Korea policy which had been taking serious view of diplomatic. He was a strong advocate of military activity reinforcement and united action in his life time. United action particularly had been effort to achieve through the New Democratic Party inauguration before 1945 and National Independence League(民族自主聯盟) after liberation. He had been devotion to form political group for military activity reinforcement and united action in Main China. Though his effort failed and seat himself in the nonmainstream group, had been given his best energies to build new policy for Korean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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