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사망 뒤 애도의 검열과 통제
Regulation and Censorship of Mourning after the Death of Sunj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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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순종의 장례는 식민지에서 흔치 않은 ‘공적 애도’의 시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1919년 고종 사망 당시 애도라는 행위가 갖는 정치적 힘을 경험한 바 있는 일제 식민 당국은, 애도의 형식은 물론 애도의 공간까지 분절하며 이를 통제했다. 소문을 수집하고 검열했으며, 물자의 이동은 물론 사람의 이동 또한 검열하고 제한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공적 애도의 장소였던 돈화문 앞을 무엇보다 삼엄히 경계하여,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자 노력했으며, 나아가 지방민들의 상경을 저지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특히, 식민 당국은 3·1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순종의 국장에서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정치적 동요들에 대해 치밀하게 대비해 왔는데, 3·1운동 이후 학생 개개인을 감시하는 대신, 학교를 활용해 학생들을 통제하도록 만든 행정 시스템이 유효하게 작동했다. 이 때문에, 송학선의거와 6·10만세운동 등이 조선인들의 열망과 달리 더 큰 대중운동으로 확산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조선 학생들은 변화한 식민 당국의 통제 방식에 순응하는 대신 또 다른 비밀스러운 연대를 통해 새로운 대응을 모색하고 있었다.
Abstract
The death of King Sunjong, the last monarch of the Joseon Dynasty, was not just the death of an individual. It created a space and time for ‘public mourning’ that was rare in the colonial context. However, the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controlled not only the forms of mourning but also the spaces for mourning. This study examines the landscape of mourning following Sunjong’s death, which, although not prohibited but permitted, was censored and controlled. The act of mourning holds political power. The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had already experienced this societal power with the death of King Gojong in 1919. In response to the potential political unrest following Sunjong’s death, the authorities drew upon the experience of the 3·1 Movement to prepare. They collected rumors and implemented censorship, restricted gatherings, and arbitrarily imposed residential limits on Koreans. One of the key locations for public mourning, the area in front of Donhwamun, was heavily guarded. After the 3·1 Movement, the colonial authorities established a system that controlled students through schools, rather than monitoring individuals. This system functioned quite effectively after Sunjong’s death. However, students, through secret solidarity, were still working towards a new form of national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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