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發靷 논의와 祔廟禮 설행 고찰
Discussion of names at King Gojong's shrine and consideration of the performance of shrine ritu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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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19년 고종의 서거에 따라 李王職에서 설행한 상장례는 조선 왕실의 典例가 계승되던 양상을 파악하면서, 李王家인 王公族의 위상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되어야 한다. 표면적으로 고종의 죽음이 일제의 폭압적 지배에 대한 저항의 도화선을 점화시키는 매개였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왕가’의 상장례가 지속되던 양상을 분석하면 식민지 통치 체제에 중층적으로 존재하던 ‘조선 왕조’의 문화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고 사료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고종의 祔廟 의례이며, 금곡릉에 세워졌던 비석 건립이었다.
Abstract
The funeral held after King Gojong's death in 1919 should be evaluated as a historical event that can explain the status of the Joseon royal family while understanding the succession pattern of the Daehan empire royal family. On the surface, Gojong's death can be seen as igniting resistance to Japanese oppression, but when analyzing the continuation of the funeral rituals of the 'Lee Dynasty', it can be seen that the 'Joseon Dynasty' had a multi-layered structure under the colonial rule system. The institution that supported and maintained it was Yi Househ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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