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金)堤上傳과 倭國
On the Biography of Bak(or Kim)jesang and Wa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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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박제상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이래 지금도 전승되는 신라시대 충신의 이야기다. 내용은 눌지왕(417~458)의 두 아우 복호와 미사흔이 각각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잡혀 갔을 때 박제상은 두 왕자를 헌신적으로 구하여 귀환시키고 자신은 왜국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박제상의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으며, 눌지왕은 두 아우가 무사히 돌아오자 이제야 근심이 없어졌다고 하여 憂息樂이라는 노래를 지어 부르며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비록 박제상의 智略과 영웅적 행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두 왕자가 돌아온 때가 같은 해(418 또는 425)라는 기록은 믿기 어렵다. 그리고 당시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 아래에 있어서 인질을 보냈다는 기록에 달리 의심을 할 이유가 없지만 신라와 왜와의 관계는 그리 밀접하지도 않았고, 왜가 신라에 인질을 요구할 정도로 세력이 강하지도 않았다. 박제상 이야기는 口述史로서 고대사의 기본 史書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고대사 사료가 그러하듯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단순한 사건이 더욱 포장되고 과장되어 감은 그 다양한 各篇(버젼)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박제상 이야기의 端初는 동해변에 있는 망부석과 눌지왕이 지었다는 憂息樂이다. 망부석은 박제상이 왜국으로도 사명을 띄고 갔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우식악을 지은 유래를 설명하자면 왕의 두 아우가 각각 다른 나라로부터 돌아왔다고 해야 그 근심이 매우 컸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Abstract
The biography of Bak Jesang, given originally in the Samguksagi and the Samgukyusa, has been handed down through centuries as the tale of an ideal loyal subject of the Silla period. The story is as follows. When Bokho and Misahun, two younger brothers of King Nulji(417~458), were taken hostage to Goguryo and Baekje respectively, Bak Jesang used his wit and succeeded in securing their return to Silla. Subsequently he was killed in Wa (a generic term referring to Japan). King Nulji threw a banquet to celebrate the return of his brothers and composed a poem, entitled “Usiknak” (Lament-ceasing Song) on the occasion. It is said that Bak Jesang's wife waited for her husband with such intense ardour that she ultimately turned into a stone. Although historical evidences confirm that Silla sent hostages to Goguryo,it seems improbable that Silla sent hostages to Wa, because Silla and Wa were not bound by close diplomatic and military ties, and furthermore, Wa was not a powerful state in the 5th century. Besides, Bak Jesang's cleverness and heroic deeds notwithstanding, it is hard to understand that Bak Jesang succeeded in securing the release and return of two Silla princes in the same year(418 or 425). As the tales of Bak Jesang were transmitted orally and form a part of Silla's folk lore, the relevant texts in the Samguksagi and the Samgukyusa contain several discrepancies and differences. This means that these texts developed a simple incident or event into a full-fledged historical narrative. Oral traditions created fictionalized version of the simple event in order to explain why the stone stood there and why king Nulji wrote the song “Usik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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