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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과 창작언어로부터 본 김사량 문학의 생성: 일본과 중국으로의 이동 경험을 중심으로

The Becoming of Kim Saryang’s Literature: Focusing on his experiences in Japan and Beij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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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격적으로 일본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일본과 중국(북경)으로 ‘이동’한 경험을 가진 김사량(1914~1950?)은 이후 ‘이동’의 경험을 이중언어 수필로 발표하였다. 김사량이 일본으로 ‘이동’했던 시기는 그가 일본어 창작을 시작하기 직전이었고, 그가 중국(북경)으로 ‘이동’했던 시기는 그가 본격적으로 일본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기 직전이었다. 이 점에서 김사량의 일본 및 중국으로의 ‘이동’은 그의 창작과 상당한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그동안 연구자들은 그의 ‘이동’에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다. ‘이동’ 경험을 다룬 김사량의 수필은 그의 전기적 사실을 정리할 때 함께 언급될 뿐, 그 수필을 그의 작품과 함께 검토한 경우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본고는 김사량의 일본과 중국으로의 ‘이동’ 경험이 그의 문학 생성(生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고찰하였다. 일본으로 ‘이동’한 김사량은 문예동인지 『제방(堤防)』과 『문예수도(文藝首都)』에 참가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확장하여 식민지 출신 작가들과 교류하고 제국의 ‘국민’에서 배제된 조선인 이주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또한 중국으로 ‘이동’한 결과 김사량은 북경 ‘만유’를 다룬 조선어 수필 「북경왕래(北京往來)」(『박문』, 1939.8)와 일본어 수필 「에나멜 구두의 포로(エナメル靴の捕虜)」(『문예수도』, 1939.9)를 남겼다. 김사량은 중국으로 이동 중에 제국 일본의 시선으로 중국의 현실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의 침공 하에 있는 북경에서 중국의 고유문화가 남아 있음을 발견하며 나아가 중국인이 ‘게릴라전’의 형태로 제국 일본에 ‘저항’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북경에 살고 있는 조선인이 제국 ‘국민’의 입장에서 조선인이 “방약무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제시하면서, 사실 조선인들은 중국인의 “포로”라고 인식하였다. 김사량의 시선은 중국인의 저항에 식민지 작가로서 공감한 것이었다. 김사량은 두 번의 ‘이동’ 경험을 통해 제국 일본의 국민 안에서 조선인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위치를 확인하였다. 그는 일본 ‘이동’의 경험을 통해 ‘국민’에서 배제된 존재들과 조우하며, 또한 중국 ‘이동’의 경험을 통해 북경에서 저항하는 중국인들의 ‘게릴라전’을 목격하며 식민지 조선인의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재고하였다. 이후 김사량은 자신의 작품에서 제국 일본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어긋나는 식민지 조선인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을 이어간다.

Abstract

Kim Saryang (1914-1950?) had experiences of “moving” to Japan and China (Beijing) before publishing works in Japanese literary magazines. He also wrote about these travel experiences in his essays, expressing how such “movement” was key to his experience as an author. Kim Saryang “moved” to Japan just before he started to write novels in Japanese, and he “moved” to China (Beijing) just before he published his works in Japanese literary magazines. Kim’s experiences of “moving” to Japan and China may be significantly related to his creative works. However, researchers have not paid enough attention to his movement across the Japanese empire. His essays directly addressing his experiences in Japan and China are generally only mentioned as a part of his biographical summary, and only a handful of studies has reviewed these essays along with his fictional works. This paper considers how Kim’s experience of “moving” to Japan and China influenced his literary creation. After he moved to Japan, he participated in literary coterie magazines Teibo and Bungei shuto, which also brought him to interact with Japanese and colonial writers. Through participating in these magazines as a coterie member, he became interested in the lives of Korean migrant laborers. On the other hand, Kim Saryang published essays which deal with his tours (manyu) in China;“Beijing Street” (Pangmun, August 1939), written in Korean, and “The Prisoner with the Enamel Shoes” (Bungei shuto, September 1939), written in Japanese. Both essays focus on his realization of the remaining indigenous cultures in Beijing under Japanese invasion, and further discovery that the Chinese are “resisting” imperial Japan in the form of a “guerilla war.” Particularly, through his Japanese essay, Kim describes Koreans living in Beijing taking a culturally superior attitude toward the Chinese, whereas Kim’s critique of the situation demarks Koreans as “captives” of China. It shows that Kim Saryang criticizes the superior attitude of Japanese and Koreans who advanced to Beijing along with the expansion of Imperial Japan, using their status as “nationals” of Imperial Japan to belittle the Chinese. As a result, Kim Saryang’s “moving” experiences reveal Korean peoples’ fluidity and unstable subjects as a “nation” within Imperial Japan. It can be said that his works released throughout the colonial period depict various subjects who deviate from the “national subject” (kungmin), who are likely influenced by his “moving” experiences in Japan and China and encounters with people excluded from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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