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徵』에 나타난 오규 소라이[荻生徂徠]의 道 인식
A recognize of Ohgyusorayiui’s Tao(道) appeared 『Noneojing(論語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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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일본 애도 시대 고문사학자로 알려져 있는 오규 소라이의 『논어징』에 나타나 있는 道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 것이다. 『논어징』은 주희의 해석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이 논문은 주희의 도에 대한 인식과 소라이의 도에 대한 인식을 비교하는 방법을 통해 소라이의 도에 대한 특징을 드러내었다. 소라이는 『논어』를 ‘先王의 道를 傳한 孔子의 말 가운데 가르침이 될 만한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논어』를 해석할 때 기본적으로 그것을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을 말한 것으로 해석하지 말고 天下를 다스리는 일을 말한 것으로 해석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그는 주희가 『논어』에서 언급하고 있는 도에 대해 사물의 당연한 이치 내지는 추상적인 우주의 원리, 혹은 인간의 도덕적 법칙이나 우주 만물의 본질로 파악하는 인식 태도와 배움의 방법을 비판한다. 소라이는 도를 사물의 당연한 이치로 파악하는 것은 우선 선왕의 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고문사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어둡기 때문에 생겨난 잘못이며, 또한 그러한 인식 태도와 학문방법은 불교와 노장으로부터 온 것이지 선왕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하였다. 소라이가 말하는 ‘도’는 공자가 배운 ‘선왕의 도’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예악으로 상징되는 사회의 제도적 장치 전반을 지칭한다. 소라이는 유학이 수양보다는 타인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제도의 학문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학문은 수양론 보다는 정치론에 비중이 크다. 그는 유학의 목적은 성인군자가 되는 도덕수양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정치기술이나 문예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동안 주자학파나 고의학파는 도덕수양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으나 소라이는 학문이란 사회의 복지증진을 위한 도구로 보았다. 그런데 소라이의 이러한 『논어』 해석은 너무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소라이는 주자와 성리학을 배척하는데 오로지 외면의 사물만을 위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道는 반드시 禮樂으로 해석하고, 仁은 安民으로 해석하며, 禮는 儀制로 해석하는데, 각 개념이 갖는 다의성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주자학에 대한 적극적인 반론, 『논어』에 대한 재해석, 그리고 고대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활용은 그가 동아시아의 차원에서도 보통의 학자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論語徵』은 中國 淸나라 시대의 고증학자인 유보남(劉寶楠, 1791-1855)의 저서 『論語正義』에 인용되기도 하였으며, 조선의 성리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역시 그의 저서를 입수해 인용하기도 하였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dissertation is to understand the recognition of ‘Tao(道)’ of Ogyū Sorai(荻生徂徠) that appeared in the 『論语征』. 『論语征』 is starts from criticism about the interpre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of Chu Hsi(朱熹). Ogyū Sorai was a Japanese Confucian philosopher. He has been described as the most influential such scholar during the Tokugawa period. Sorai rejected the moralism of Song Confucianism and instead looked to the ancient works. He argued that allowing emotions to be expressed was important and nurtured Chinese philosophy in Japan for this reason. Sorai attracted a large following with his teachings and created the Sorai school, which would become an influential force in further Confucian scholarship in Japan. Therefore, this dissertation reveals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cognition of ‘Tao’ of Ogyū Sorai, through the comparison of the recognition of ‘Tao(道)’ of Ogyū Sorai and Chu Hsi. Sorai thought that 『論語』 is a book that has recorded what can be teachings among the Confucius say. And he also thought that ‘Tao’ is the institutional mechanisms for social reign. Moreover, he saw the ancient Chinese sage-kings as concerned not only with morality but also with government itself. And in his mind, Confucianism is the study to rule the world and govern human beings. In addition to this, Sorai thought that the study is a tool for promoting the welfare of society.
참고문헌 (13)
- "論語", ~
- "孟子", ~
- "大學", ~
- "中庸", ~
- "禮記", ~
- 荻生徂徠, "論語徵"
- 荻生徂徠, "辨名"
- 朱熹, "論語集注"
- 朱熹, "大學集注"
- 朱熹, "中庸集注"
- 의 『논어』해석 :「학이」- 주자의 해석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동양철학연구", 2008, 257~302, pp.동양철학연구회
- 함현찬, "장재 송대 氣철학의 완성자" (2003),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함현찬, "주돈이 성리학의 비조" (2007),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