廢主와 함께 남겨진 사람들 -燕山朝 節臣 기억의 형성과 전개-
The People Left with the Dethroned Lord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Memories about Yeonsangun(燕山朝)’s Loy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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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문인 사회에서 ‘燕山朝 節臣’으로 호명된 인물들의 면면과 그 史的 형상화 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선은 유가 이념을 표방하며 건국된 나라로서 자신이 한 번 섬긴 임금에 대한 마음을 변치 않아야 한다는 의리관을 공고히 견지하였다. 이러한 관념은 ‘暴君’이라 일컬어진 연산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의 문인들은 연산군에 대해 절의를 지킨 인물을 찾고자 노력하고 반대로 이를 저버린 인사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는 등 ‘연산조 절신’에 대한 적지 않은 관심과 요구를 보였다. 洪彦忠, 兪起昌, 南褒는 바로 그와 같은 주목과 기대 속에서 ‘탄생’한 연산군의 절의지사들이었다. 이들은 비록 저마다 다른 성장 배경과 이력을 가졌지만, 중종반정 이후에도 끝까지 옛 임금에 대한 의리를 지키면서 은거의 길을 택한 인사들로 기억되었다. 다만 이들이 점유한 ‘절신’으로서의 지위는 어느 일순간에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후손 및 후배 문인들의 오랜 기간에 걸친 현양 작업에 힘입어 존재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절의 관련 敍事의 정비‧윤색‧조탁 등 치열한 인물 재구성 노력의 과정을 수반하는 것이었으며, 때로는 오해와 와전이 절신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바로 이와 같은 과정이 있었기에, 연산군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지 않고 자신을 위해 남아 충절을 다한 ‘節臣’들과 함께 기억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연산조 절신에 대한 기억과 그 형상화 양상은 시대를 거듭하며 점차적으로 고조‧확장되어 간 유가적 의리관과 절의에 대한 관심을 배경으로, 부연‧수식‧재조명의 과정을 더해가며 이상적인 ‘연산조 절신의 像’을 정립하고자 노력했던 조선 후기 문인들의 면모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는 그간 ‘暴君’, ‘亂政’, ‘士禍’, ‘反正’ 등 제한적인 범주에서만 논의되는 경향이 강하였던 ‘연산군 내러티브’의 발굴과 확산에 있어서도 긴요한 참조점이 된다.
Abstract
This thesis researched the aspects of the figures who were called “Yeonsangun(燕山朝)’s loyalist” in the Joseon literary society and their historical shaping process. The Joseon Dynasty, as a country founded by Confucian ideology, particularly emphasized a sense of loyalty that one should not change his mind toward the king he once served. This notion was similarly applied to Yeonsangun who called ‘tyrant’. Therefore, the writers of Joseon showed considerable interest for Yeonsangun’s loyalist, such as trying to find a person who kept his devotion to Yeonsangun or criticizing the person who went back on him. Hong Eon-chung(洪彦忠), Yu Gi-chang(兪起昌), and Nam po(南褒) were Yeonsangun’s loyalist who were “born” with this background and expectation. Although each of them had different backgrounds and careers, they were remembered as those who chose the path of retirement keeping their loyalty to the former king after Jungjong-banjeong(中宗反正) However, the status as loyalist was not suddenly given at any one moment, but could exist thanks to the long-standing commemorative work of various descendants and junior writers. This entailed the process of fierce restructuring efforts, such as reorganization, embellishment and carving, and sometimes misunderstanding and misrepresentation had a decisive effect on the formation of the loyalist image. But because of this process, Yeonsangun could be remembered along with loyalists who did not go forward to a new era and remained for him. This memory of Yeonsangun’s loyalist and its formation aspect shows the effort of Joseon writers who tried to establish the ideal image of loyalty. In addition, this will be an important reference point for the discovery and spread of the Yeonsangun Narrative, which has been discussed only in limited categories such as ‘tyrant’, ‘tyranny’, and ‘massacre of scholars(士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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