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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대의 여진인 “來朝” 연구

A Study of the Jurchen Envoy in Seongjong’s Reign of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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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조선의 제도가 완비된 성종대의 여진인 내조의 현황을 중심으로 조선이 여진인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려고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성종대에는 이전 왕대의 여진 정책을 계승하여 재위 연간 344회에 이르는 여진인 내조가 있었다. 따라서 성종대 여진인 내조의 현황을 그 시간의 추이 과정과 세력별, 월별 등으로 분석하여 조선이 여진인의 내조를 통제하는 양상과 수용 의도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여진인의 내조는 조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고, 이를 통해 조선은 명의 질서를 인정하는 가운데 다시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여진인의 내조를 수용하여, 이들에 관한 접대규정 및 내조 시기 등을 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 및 시기 등은 명이 여진인에게 행한 것과 거의 같은 양상을 보인다. 특히 여진인의 내조 시기가 11월, 12월, 1월에 집중되었는데, 이는 여진인이 동지와 정조의 하례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성종대는 각종 제도와 의례의 완비와 맞물려 여진인의 내조 횟수, 인원, 시기 등을 재정비하는 시기였고, 후대 왕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what relationship Joseon would set up between the Joseon and Jurchen focusing on the status of Jurchen envoy in King Seongjong’s reign where the system of Joseon was completed. In this time, there were 344 Jurchen envoys as King Seongjong succeeded the Jurchen policy of inherited King. This paper studied how Joseon controlled the Jurchen envoy and why Joseon accept it by analysing the status of Jurchen envoy in trend, power and time. As a result, the intention of Joseon is the most important factor for the Jurchen envoy. Joseon would construct the self-centered order through Jurchen envoy while accepting the order of Ming. As accepting Jurchen Envoy, Joseon made the reception rule and time of envoy. These rules and time are very similar to what Ming had. There were most Jurchen envoys in November, December and January to attend Dongii and Zhengcho conratulatory rites. Various policies and rites were completed in Seongjong’s reign. In this time, reformation including envoy frequency, people, and time was finished, too. Therefore, this era has a strong influence on later 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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