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여진인 ‘來朝’의 종언
The End of the Imjinwaeran and Jurchen Mission to Han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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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조선초기부터 이루어진 여진인 내조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폐지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조선은 건국 이전부터 두만강 유역의 여진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來朝와 授職을 통해 이들을 자신의 외교질서에 편입하였다. 특히 조선은 세종대 6진을 설치하면서 두만강 유역에 거주하는 여진인을 ‘조선의 울타리’, 즉 藩籬․藩屛으로 구축하며 변경의 안정화를 꾀하였다. 그러나 연산군대부터 여진인의 내조 기록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여진인이 조선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들의 내조는 계속되었다. 宣祖代에도 여진인에 관한 기록은 적지만 이들의 내조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선조 16년에 조선의 질서에 반하는 ‘니탕개의 난’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이들의 내조를 수용하였다. 그런데 임진왜란으로 양자 관계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임진왜란의 종식 후, 조선은 藩胡의 상경을 허락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조선은 번호의 경제적 욕구를 충족해 주는 방식으로 대여진 정책을 선회하였다. 이는 기존의 성격과 다른 것으로 여진인 내조의 폐지를 뜻한다. 즉 내조를 기반으로 건국 초부터 유지되던 ‘조선 중심의 외교질서’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have showed the Jurchen(女眞) mission to Hanyang(來朝), policy of the Joseon(朝鮮) about Jurchen, the process from personality change of the Jurchen mission to Hanyang to the end in a period before and after the Imjinwaeran(壬辰倭亂). Joseon still to maintain the independent diplomatic order. But Imjinwaeran broked down such order. Joseon couldn't accept the mission to Hanyang from the Jurchen any more. Therefore Joseon changed the place of hospitality from Hanyang(漢陽) to Hamhung(咸興) in Hamkyungdo(咸鏡道). And Joseon lost the Jurchen of Duman River(豆滿江) Basin to Nurhaci(奴兒哈赤). As a result, Joseon lost the influence over the Jur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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