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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대 조선의 對여진 征討와 그 실상―李廷龜의 箚子⋅獻議를 중심으로―

The Reality and Skepticism on the ‘Punitive Expedition’ against the Jurchens in the Reign of Sŏ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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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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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선조대 對女眞 정책의 하나인 征討의 성격을 고찰한 것이다. 정토는 군사력을 동원한 강경책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藩籬를 복원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번리는 조선의 육진 인근에 거주하던 藩胡 부락들로 구성된 ‘울타리’를 의미했는데, 그 외연의 深處胡를 방어한다는 군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번호는 16세기 중반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17세기 초 대부분 建州女眞에 귀속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선조대인 16세기 말에 집중된 정토는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고 현상유지를 꾀하려는 의도에서 진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선조대 말 번호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정토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을 다룬다. 특히 李廷龜가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반대론을 집중 분석함으로써 시행의 당위와 실제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서 조선의 대여진 정책이 後金⋅淸에 대한 외교정책으로 전환되는 연결고리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nature of the ‘Punitive Expedition (征討)’ as a part of policy toward nearby Jurchen tribes. The expedition itself was a tough line policy using military might, but its fundamental purpose was to restore ‘pŏnli (藩籬)’, a fence consisted of Boundary Jurchen (pŏnho; 藩胡) tribes to protect Chosŏn from outer Deep-Dwelling Jurchens (深處胡). Boundary Jurchens are seen in the records of the mid-16th century, but they became extinguished in the early 17th century when most of them were subjugated by the Jianzhou Jurchens (建州女眞). The expeditions were launched mostly around the late 16th century, during the reign of Sŏnjo, to prevent these changes and maintain the status quo. This study further investigates the skepticism on the expedition, especially on its effectiveness. Yi Jŏnggu (李廷龜) is one of the ministers who articulated against the expedition, and his arguments shows the difference between the reality and the oughtness. Through his eyes, we can find a transitional link where Chosŏn policy toward Jurchen tribes transforming into interstate policy toward the Later Jin and the Q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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