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명문을 가진 소금동불상 분석을 통한 고대인의 불교신앙생활
The practicing of Buddhist faith of the people in three Kingdoms through an analysis of Small Gilt Bronze Buddha statues with inscri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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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삼국시대 불상 가운데 현재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소금동불이다. 소금동불은 주로 불상만 독존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들 불상에는 뒤에 광배꽂이가 남아 있어 원래는 광배가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예가 상당수 있다. 현전하는 명문이 있는 소금동불상은 9건에 불과하지만 삼국시대 사람들이 주로 광배에 명문을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광배를 잃어버린 소금동불 가운데에는 명문을 가진 불상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명문의 내용은 부모나 처 등 근친자의 추복을 기원하는 소원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현재 부모를 위해서 혹은 자신이 부처를 만나 불법을 듣기를 바라는 등 모두 개인적 소원 성취가 조상의 목적이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삼국시대 사람들은 소금동불상을 만들면 그 공덕으로 자신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상당히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소금동불은 주로 탑이나 사찰에서 발견된다. 불상이 탑 속에 사리장엄으로써 다른 장엄구와 함께 안치되었거나, 또는 사찰 어딘가에 있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유점사 본전인 능인보전의 주존으로 예배의 대상이 되어 온 53개의 소금동불상들, 사찰 혹은 금당의 구현인 석굴에 천불이 모셔진 예 등을 볼 때 현세 천불 가운데 하나인 연가7년명 등의 금동불상들이 사찰의 전각에 모셔져 예배의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삼국시대 명문 소금동불상은 근친자의 추복을 위해 만들어진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들 추복을 바라는 소금동불상들도 53불이나 천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찰의 전각과 같은 일정한 장소에 모셔져 예경되었을 것이다. 이들 불상 중 석가상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사실은 당시 불교신앙에서 석가가 중심적 지위였던 점을, 그리고 명문에서 보이는 불교 이해의 불완전성은 소금동불 조성자들을 비롯한 삼국시대 사람들의 불교이해 수준이 아직 충분하지 못한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Abstract
Small Gilt Bronze Buddha statues are found in pagodas as parts of the sarira or temples. Considering that the Yoo Jum temple's 53-Buddha statues are enshrined in Yoo Jum temple as the main Buddha statues and became as an object of reverence and the example of 1000-Buddha statues' cave of the Long Mun caves temples, the Yeon Ga 7th year's inscription-Buddha statue and other 1000-Buddha statues have a high probability of being enshrined in a temple. Also the Buddha statues of praying for repose of the deceased, which take up the most part of miniature gilt bronze Buddha statues with inscriptions, were probably taken to a certain place in the temple and worshiped. This is similar to the examples of the 53-Buddha or 1000- Buddha. The reason why the construction of Won Chals(temples for praying for repose of the dead) were popular among the aristocrats is probably same as people without such financial abilities made small gilt bronze Buddha statues and prayed for the dead. These statues were enshrined in the temple and revered. From this we can see that in aristocrats or in peoples of lower social status, praying for the dead by building Buddha statues was popular, although there was a difference in the scale. The primary motive of building Buddha statues was to revere the dead, and the popularity of the Siddhartha statues as objects of wishing can be inferred from its high share of the Buddha stat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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