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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체제기 일본 유학생의 사회 진출과 식민지 엘리트의 위상- 조선공업협회 『朝鮮技術家名簿』 분석을 중심으로 -

The Entry of Korean Students in Japan into Society and the Status of the Colonial Korean Elite during the War (1930-1945) -Focusing on the Analysis of the “Korean Technician List (Chosen Industry Associ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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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의 목적은 전시체제기 일본 유학생의 사회진출과 식민지 엘리트로서의 위상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주로 조선공업협회에서 조사한 전문기술가 리스트를 출신학교별, 지역별, 전공별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일제강점기 전문기술가들의 존재형태를 파악할 수 있고, 해방 이후 단절성과 연속성을 알 수 있다. 유학생들은 도쿄, 교토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에 있는 약 38개 대학에서 전문 기술을 수학하였다. 이들은 총독부와 지방행정청에 가장 많이 취직했고, 군수공장이나 중등학교 교사로 진출하였다. 그것은 당시 미나미 총독이 대륙병참기지화 정책을 취하면서 공업과 광업 분야에 많은 공무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이 일제의 침략전쟁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관공서, 교육기관, 민간기관에 취직하였으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식민지 2등 민족이라는 이유로 높은 직책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선진 문물을 배운 유학생들은 식민지 앨리트로서 해야 할 역할인 교육체계를 구축하거나 전문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국의 중견관리자나 하급기술자 역할에 머물고 말았다. 하부 지식계층으로서 위상을 만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일본과 조선의 종속적 기술 시스템 때문이었다. 즉, 일본 본토에서 생산기구나 생산수단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식민지 조선에는 그 기계를 이입하여 운용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므로 유학생들은 기초 학문분야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하급 기술을 배워 총독부 체제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사회체제의 발전을 견인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힘든 식민지적 구조가 형성되었다. 식민지 앨리트들에게 해방이라는 역사적 조건은 일본인 자리를 대신하여 전문 엘리트 집단으로서 새로운 국가 건설의 기초 토대를 만드는 기회로 다가왔다. 미소군정기와 한국전쟁을 통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유학생들은 조선학술원과 서울대학, 김일성대학을 건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듯 식민지 시기 일본인들이 차지하던 중추적인 역할을 해방 후에는 한국인이 대신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역설적으로 일제 강점기 식민지 앨리트들은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으며,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문과학기술과 배제된 지식인 계층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entry of Korean students in Japan into society and the status of the colonial Korean elite during the war. We mainly analyzed the list of professional experts from the Chosen Industry Association by alma mater, region, and major. Through this analysis, we were able to identify the forms the professional experts existed as and understand their discontinuity and continuity after liberation. Overseas students learned science and professional technology not only in Tokyo and Kyoto but also at 38 universities(colleges) on the Japanese mainland. These people were mostly employ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Chosen(朝鮮) and regional administrative offices, and they also worked in munitions factories or as secondary school teachers. This was because, at the time, Governor-General Minami needed many civil servants in the industrial and mining fields as he implemented a policy to turn Korea into a military base. Therefore, overseas students during the war played the role of middle managers or low-class technicians for Imperial Japan as the colonial elite. However, with a few exceptions, they could not reach high positions for the simple reason that they were colonized people. Within these restrictions, overseas students became a new intellectual middle class in cities as they were employed by educational institutions and private companies. These students who studied in Japan and learned advanced culture entered society; however, this led to them tolerating their knowledge being used for Japanese wars of aggression. Of the overseas students, about half entered public offices, and they came to form the lower intellectual class who mobilized their own compatriots to maintain the colonial system. Overseas students within the Japanese general mobilization system supported the colonial system by learning low-class technical skills that could be used immediately, rather than fundamental fields of study; therefore, a colonial structure was formed in which it was difficult to develop new skills that could lead to the development of social systems. After liberation, overseas students replaced the Japanese to form a professional elite in an effort to create a basic foundation for nation building of the new country. Although they faced many trials and tribulations due to the US and Russian military administrations and the Korean War, the overseas students played a pivotal role in establishing the Chosen Academy,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Kim Il Sung University. As such, the Japanese occupying key positions during the colonial period were replaced with Koreans after liberation, which paradoxically shows that the technicians during Japanese colonial rule were an oppressed intellectual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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