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삼별초의 진도 입도와 진도용장성전투 검토
A Study on the Entry by Sambyeolcho of Goryeo into Jindo and Jindo Yongjangseong B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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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려 원종이 몽고와의 전쟁을 중단하고 개경으로 돌아가자, 삼별초는 반발하였다. 삼별초는 1270년 5월에 강화도에서 전쟁을 계속하기를 원하며 봉기하였다. 그들은 8월에 지리적 이점 등 방어에 장점이 많은 진도 용장성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삼별초는 기세를 올리며 위력을 떨쳤다. 마침내 다음해인 1271년 5월에 ‘진도용장성전투’가 벌어졌다. 그런데 이 글에서 벽파정 일대가 당시 섬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 보았다. 연합군은 밀물 시 벽파정이 일시적으로 섬이 되어 있을 때에 삼군을 분산하여 상륙에 성공하였다. 결국 삼별초는 대패하여 탐라(제주)로 웅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진도에서 삼별초의 패배 원인은 네 가지였다. 첫째, 삼별초의 방심이었다. 둘째, 원래 같은 고려군 출신으로서 서로의 수를 잘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 더해 고려와 몽고가 연합군을 형성함으로써 삼별초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하였다. 셋째, 연합군의 분산 상륙작전이 삼별초에 혼선을 안겨주었다. 넷째, 연합군이 신무기인 화약을 사용한 것이 큰 효과가 있었다.
Abstract
As Wonjong of Goryeo declared the cessation of war against the Mongols and returned to Gaegyeong, there was a backlash from Sambyeolcho against the decision. In May 1270, the Sambyeolcho rose in rebellion in Ganghwado, in an attempt to continue to fight against the Mongols. In August, they made an entry into Yongjangseong in Jindo. Initially, the Sambyeolcho increased their momentum, flexing its muscles. Eventually, in May 1271, the Jindo Yongjangseong Battle was fought between the Goryeo-Mongol allied forces and the Sambyeolcho. This study elucidates a new fact that the area around Byeokpajeong was an island. The allied forces dispersed into three groups of troops when Byeokpajeong became an isolated island during high tide, which led to their successful landing at the island. In the end, the Sambyeolcho, defeated, fled to Jejudo. There were four contributing factors to the Sambyeolcho’s defeat in Jindo. One factor was unguardedness on the part of Sambyeolcho. Another factor was, not only the Goryeo government forces but also Sambyeolcho knew each other’s next move since they both had served in the same Goryeo army. In addition to this, the formation of an alliance between Goryeo and the Mongols gave the Goryeo-Mongol allied forces a relative advantage over the Sambyeolcho. Third, the dispersed landing operations conducted by the allied forces caused confusion to the Sambyeolcho. Fourth, the new gunpowder weapon that the Goryeo-Mongol allied forces used proved to be eff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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