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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소론계 가문의 존재와 계승 양상 -봉화 진주강씨 姜恪 가문을 중심으로-

The Aspects of Yeongnam Soron-faction Family’s Presence and Succession -Focusing on Bonghwa Jinju Gang Kang-gak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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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는 영남에서 드문 소론 가문 진주강씨 강각 가문을 다룬 글이다. 병자호란 때 이 가문은 서인계 가문으로 영남에 내려와 입향조의 장·차남 후손들이 각기 노론과 소론으로 색목을 지향하였다. 한 가문 내 老少가 분기한 사례는 영남에서 거의 유일한 경우로 보여진다. 차남계열의 소론계 강각 가문은 입향 때부터 남인계가 절대 다수인 지역 사정을 감안해 줄곧 남인계와 혼반을 지속하였다. 특히 19세기 접어들어 혼인의 격이 크게 향상되는데 이는 소·대과 급제자의 격증 및 유일천 배출 등으로 가문이 성장하는 것과 연관이 있었다. 또한 일찍이 영남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는 근기지역에서 안동권으로 경제 기반을 전환 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은공파의 파조 강각의 장남 강찬이 윤증을 사숙한 이래 후손들은 소론 학통을 계승하게 된다. 그는 도학에 천착하고자 서실을 세워 강학과 후학 양성소로 삼았다. 이 서실은 가학 연원이자 상징적 공간이었으며, 문중이 단결하는 구심처 역할을 하였다. 가풍을 확장시키는 가교적 역할을 한 강재항은 백부 강찬에 이어 윤증에 입문하였다. 그는 색목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유연한 소유자로 그 교유 범위가 남인, 노·소론 인사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바로 ‘반소반남’의 가풍을 확고히 계승한 인물이었다. 이어 강필효는 윤증·윤동원의 적통을 계승한 윤광소의 고제로 본 가문에서 배출한 최고의 학자이다. 영남에서 소론학풍의 고양은 그가 개설한 법계서실 운영과 서원 활동으로 나타났다. 전자에서는 정기적 강학과 특강을 통해 소론계 강학처로서 기능을 했고, 후자에서는 서원 방문과 문자를 통해 자신의 학문적 연원을 지속적으로 상기 또는 소환하여 형상화하였다. 이처럼 영남의 대표적인 소론인 강각 가문에 대한 연구는 조선후기 영남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데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이 된다.

Abstract

This study deals with Jinju Gang Doeungongpa belonging to Soron family that is hardly found in Yeongnam. Two son descendants of the iphyangjo (入鄕祖) coming down to Yeongnam during Byeongjahoran pursued their own saekmok separately as Noron and Soron. The case that the old and the young were divided in a single family seems to be the one and only in Yeongnam. Soron-faction Doeungongpa of the second sons continued their marital relations constantly with Namin considering the regional situation that Namin had formed the absolute majority since the iphyang (入鄕). Especially from the 19th century, the status of marriage was elevated considerably, and it was associated with this family’s growth, for instance, the dramatic increase of those who passed So․Daegwa or the discharge of Yuilcheon. Also, the will to be one of Yeongnam people could be already found in the change of economic grounds from Geungi to Andong area. After Doeungongpa Pajo Gang Gak’s firstborn son, Gang Chan, did sasuk (私淑) pursuing Yun Jeung, the descendants succeeded the Soron school. Scrutinizing ethics, he built seosil and took it as a place for ganghak and cultivating younger scholars. This seosil played roles as the origin of gahak and symbolic space and also the pivot of uniting the clan. Gang Jae-hang who had bridging roles in extending the family tradition entered yunjeung following the uncle, Gang Chan. He was a flexible person that was rather free of saekmok, and the range of his association included Namin and No․Soron people broadly. He was a figure that succeeded the family tradition of ‘Bansobannam’ firmly. Gang Pil-hyo, the gojae (高弟) of Yun Gwang-so who succeeded the main line of Soron, was the top scholar discharged from the family. His Soron-related deeds in Yeongnam are found as the operation of Beopgyeseosil and the activities of seowon. About the former, with his regular ganghak and special lectures, it functioned as a place for Soron-related ganghak. Concerning the latter, through visiting seowon and munja, he kept recalling and bringing up the academic origin of his and embodied that. As shown above, research on Soron Doeungongpa that can represent Yeongnam appears to have significant meaning in revealing the diversity of Yeongnam society in late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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