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6년 공민왕의 ‘反元改革’ 재론
Reexamination of the so-called 'Anti-Yuan Reforms' Conducted by King Gongmin during the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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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에서는 1340년대 원제국 내 정치 세력의 동향과 충목왕대 整治都監의 치폐 과정, 공민왕 즉위 배경 등을 검토하여 1356년 공민왕의 소위 ‘反元改革’을 재검토해 보았다. 1340년 바얀(伯顔)의 실각으로 고려 공녀 출신 奇氏는 원제국의 제2황후로 책봉되고, 고려에서는 기씨 일족의 聲勢를 가져왔다. 1340년대 충혜왕이 겪은 정치적 비운은 표면상 엘테무르와 바얀 간의 알력에 인한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그를 유배 보내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기황후세력이었다. 충혜왕의 비극적 죽음을 둘러싼 순제와 기황후의 갈등과 알력은 충목왕대 설치된 整治都監의 운영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1349년 톡토의 復相을 계기로 일단락되는 듯한 양자 간의 갈등은 1354년 톡토가 실각되고, 1356년 기황후의 內禪 시도로 다시 긴장상태가 되었다. 이런 관계에서 볼 때, 충정왕을 갑자기 폐위시키고 공민왕을 즉위시킨 ‘元’의 권력은 기황후가 아니라 순제 토곤테무르이고, 곧 이를 배경으로 공민왕 즉위년에 조일신은 기씨일족과 고용보를 주살하기 위한 난을 일으킬 수 있었다. 요컨대 충혜왕의 죽음은 여원 양국 관계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으로 제국 내 기황후와 아유시리다라의 제위 탈취 시도되자 同母兄 충혜왕 죽음에 대한 宿怨, 기철을 핵심으로 하는 기황후세력의 고려왕실에 대한 치명적 위협이 1356년 공민왕이 소위 ‘반원개혁’을 일으킨 근본적 배경이었다. 만약 왕권을 위협하는 기철 일당을 제거하는 것이 공민왕의 궁극적 목표였다면 1356년의 시도는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순제와 황후의 갈등과 대립, 사후 순제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Abstract
本文为了了解1356年所谓恭愍王之‘反元改革’的真相, 着重探讨了1340年代元朝内部政治势力的动向与忠穆王代整治都监的置废过程,以及恭愍王的即位背景等的问题。顺帝想要立宠爱的奇氏为皇后,可是丞相伯颜力阻。1340年伯颜被击败后,奇氏更册封为第二皇后。从此以来,在高丽的奇氏家族,依仗奇皇后的势力,为所欲为。在表面上看,1340年代初忠惠王经历的政治上的风波,均是由燕帖木儿和伯颜之间的矛盾所引起的。但最终将他驱逐并死亡的,是奇皇后势力。1344年忠惠王的死亡与忠穆王的即位,意味着严重破坏当初丽元两国之间设定的王位相传之规律。 其次,通过忠穆王代整治都监的置废过程,我们能发现忠惠王的如此悲惨的死亡,引起了顺帝与奇皇后的之间的矛盾和纠葛。我认为1344年脱脱的罢相,与忠惠王的死亡、皇帝与皇后之间的矛盾有一定的关系。1349年脱脱的复相,意味着两者之间的纠葛和冲突缓解了。但1354年脱脱再度被贬与被杀后,1356年奇皇后与哈麻紧密结合在一起,谋图內禪。废立忠定王,而支持恭愍王即位的'元政治势力是顺帝,而不是奇皇后。从这个背景上,恭愍王随从功臣赵日新才能试图铲除奇皇后家族和高龙普等。 总之,1356年奇皇后与哈麻合逼迫顺帝禅位,并奇轍严重威胁王权的情况下,恭愍王就果断肃清了以奇撤为首的威胁国王位的分子,从这个意义上可以说这次改革是成功的。但这是元顺帝的容忍和默认下才能实现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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