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公無渡河歌>의 作者와 創作空間에 대한 文獻的 硏究

A Literary Study on the Writer and Creative Space of <Kongmudohaga>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본고는 <公無渡河歌>의 ‘朝鮮津卒霍里子高’와 ‘渡河’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통해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 노래의 작자와 창작공간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공무도하가>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작자의 국적 문제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쟁점이 있었다. 이러한 쟁점은 고문헌은 물론 근래의 연구에서 노래가사로서의 <공무도하가」와 음악으로서의 「공후인」을 구분하지 않은 데 기인하는 바 크다. 시가로서의 <공무도하가>를 처음 기록한 崔豹의 『古今注』에서는 <箜篌引>은 여옥이 지은 것이라고 하면서도 白首狂夫의 아내가 <공무도하가>를 지었다고 밝혔는데도, 箜篌引은 朝鮮津卒 霍里子高의 처 麗玉이 지은 것이라는 첫 문구에 끌려 <공무도하가>의 작자를 麗玉으로 단정한 것이다. <공무도하가>는 창작 추정 시기와 문헌수록 시기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 이럴 경우, 채록 당시의 문화지리적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 긴요하다. ‘朝鮮津卒’이나 ‘渡河’의 ‘河’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朝鮮津卒霍里子高’ 특히 ‘霍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동안 학설이 분분했으나, 본고에서는 『萬姓統譜』 『欽定續通志』 등의 고문헌에 수록된 자료를 바탕으로, 霍里는 ‘霍氏의 마을’이고, ‘霍里子高’는 그 마을에 사는 古朝鮮 사람임을 밝혔다. <公無渡河歌> 등장인물들의 국적과 <공무도하가>의 창작공간을 확정함에 있어 ‘渡河’의 河의 성격을 구명하는 것이 절대적 전제조건인 바, 본고에서는 <공무도하가>의 河는 大同江이 아니라 遼西지역의 朝鮮河인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는 河를 대동강으로 보았던 조선후기 실학자들과 이에 근거하여 <공무도하가>의 河를 대동강으로 확정적으로 보거나 또는 판단을 보류한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것이다. 河가 遼西지역에 있던 朝鮮河라는 사실은 霍里子高 부부와 白首狂夫 부부의 국적 및 <공무도하가>의 국적을 확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이다.

Abstract

This study deals with the writer and creative space of <Kongmudohaga> in the light of two keywords, ‘Chosunjinjol’ ‘Kwakrijago’ and ‘doha’, as their identification has been at a standstill. There were several controversial issues including the writer’s nationality related to <Kongmudohaga>. These issues were raised largely because <Kongmudohaga> as lyrics and <Konghuin> as music were not definitely distinguished in recent studies as well as in ancient writings. Even though Choe Pyo’s 『Kogeumju』, recording <Kongmudohaga> as lyrics for the first time, showed that <Konghuin> was written by Yeo-ok and that <Kongmudohaga> was written by a white-haired mad man’s wife, the writer of <Kongmudohaga> was often concluded to be Yeo-ok because of its first phrase where <Konghuin> was written by Yeo-ok, the wife of Chosunjinjol Kwakrijago. There was a considerable gap between the presumed writing time and the literature-recording time of <Kongmudohaga>. In this case, it is important to consider the cultural and geographical circumstances in its recording time. Chosunjinjol or ‘ha’ of ‘doha’ should be approached in the same viewpoint, as well. There have been several views particularly about ‘Kwakri’ of ‘Chosunjinjol Kwakrijago’. This study showed that Kwakri was a last name and Kwakrijago was from Gojoseon, Korea’s first kingdom, on the basis of materials recorded in ancient literature such as 『Manjeongtongbo』, 『Heumjeongsoktongji』 and so on. As ‘ha’ of ‘doha’ should be identified as an absolute precondition in confirming the nationality of characters and the creative space of <Kongmudohaga>, this study revealed that ‘ha’ of <Kongmudohaga> was not the Taedong River, but the Chosunha in the region of Liaoxi. This revelation overthrew the conventional theories which reached the same conclusion under the influence of pragmatists in the late Chosun Dynasty who concluded ‘ha’ of <Kongmudohaga> to be the Taedong River, or which reserved its identification. The fact that ‘ha’ was the Chosunha in the region of Liaoxi provided a critical clue in identifying the nationalities of Kwakrijago and his wife, of the white-haired mad man and his wife, and of <Kongmudohaga>.

참고문헌 (62)

  1. 郭茂倩, "樂府詩集", ~
  2. 歐陽詢, "藝文類聚", ~
  3. 羅泌, "路史", ~
  4. 凌迪知, "萬姓統譜", ~
  5. 酈道元, "水經注", ~
  6. 房玄齡, "晉書", ~
  7. 白居易, "白孔六帖", ~
  8. 謝維新, "『古今合璧事類備要』 外集", ~
  9. 徐堅, "初學記", ~
  10. 沈約, "宋書", ~
  11. 樂史, "太平寰宇記", ~
  12. 王應麟, "玉海", ~
  13. 劉昫, "舊唐書", ~
  14. 李賢, "明一統志", ~
  15. 趙宏恩, "江南通志", ~
  16. 朱彛尊, "日下舊聞考", ~
  17. 曾公亮, "武經總要", ~
  18. 曾慥, "類說", ~
  19. 陳暘, "樂書", ~
  20. 陳悳, "大淸一統志", ~
  21. 蔡邕, "琴操", ~
  22. 崔豹, "古今注", ~
  23. 嵇璜, "欽定續通志", ~
  24. 朴趾源, "燕巖集", 民族文化推進會
  25. 柳得恭, "泠齋集", 民族文化推進會
  26. 徐居正, "四佳集", 民族文化推進會
  27. 成海應, "硏經齋全集", 民族文化推進會
  28. 丁若鏞, "與猶堂全書", 民族文化推進會
  29. 車天輅, "五山說林草藁", 民族文化推進會
  30. 韓致奫, "海東繹史", 民族文化推進會
  31. 安自山, "朝鮮文學史" (1922), 韓一書店
  32. 金台俊, "朝鮮漢文學史" (1931), 朝鮮語文學會
  33. 李家源, "韓國漢文學史" (1961), 民衆書館
  34. 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1976), 博英社
  35. 尹元植, "韓國古代歌謠" (1986), 새문사
  36. 이병도, "한국상고사입문" (1989), 고려원
  37. 이기동, "『한국사강좌』1 고대편" (2001), 일조각
  38. 이성규, "낙랑문화연구" (2006), 동북아문화재단
  39. 노태돈, "단군과 고조선사" (2010), 사계절
  40. 심백강,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 (2014), 바른역사
  41. 成基玉, "公無渡河歌 硏究: 韓國 抒情詩의 發生問題와 관련하여", 박사, 국어국문학, pp.1989
  42. 南恩璟, "東溟 鄭斗卿 文學의 硏究", 박사, 국어국문학, pp.1998
  43. 길준웅, "공무도하가 연구- 백수광부의 정체와 죽음의식", 석사, pp.2005
  44. 변유유, "<공무도하가> 연구 : 중국 시가에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석사, 국어국문학, pp.2007
  45. 조인환, "<공무도하가> 연구", 석사, 국어국문학, pp.2009
  46. 윤신혜, "『공무도하가』의 현대소설적 변용 연구 - 구효서의 소설 『공무도하가』의 인물을 중심으로", 석사, pp.2015
  47. 梁在淵, "公無渡河歌(공후인)小考", 국어국문학, (5) (1953), 국어국문학회
  48. 徐首生, "箜篌引新考", 어문학, 7 (1961), 한국어문학회
  49. 崔信浩, "箜篌引異考", 東亞文化, 10 (1971),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50. 池浚模, "<公無渡河> 考正", 國語國文學, 62.63 (1973), 국어국문학회
  51. 金學成, "箜篌引의 新考察", 冠岳語文論集, 3 (1978),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52. 成基玉, "<公無渡河歌> 형성의 역사적 배경", 울산어문논집, (5) (1989),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53. 이해산, "早期의 文獻資料로 본 <箜篌引>", 牧園語文學, 13 (1995), 牧園大學校國語敎育科
  54. 조기영, "<公無渡河歌>연구에 있어서 열가지 쟁점", 牧園語文學, 14 (1996), 牧園大學校國語敎育科
  55. 金榮洙, "<公無渡河歌> 新解釋-‘白首狂夫’의 정체와 ‘ 被髮提壺’의 의미를 중심으로", 韓國詩歌硏究, (3) (1998), 한국시가학회
  56. 최태호, "<공무도하가> 연구", 인문사회과학논문집, 7(2) (2003), 중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57. 김성기, "공後引의 作家에 對한 硏究", 한국시가문화연구, (13), pp.75~94 (2004), 한국시가문화학회
  58. 변유유, "<공무도하가> 연구", 경상어문, 12 (2006), 경상어문학회
  59. 김성수, "史記를 통해 본 公無渡河歌의 작품 배경 位置考", 대동문화연구, (60), pp.127~150 (2007), 대동문화연구원
  60. 남재철, "<公無渡河歌>의 國籍", 한국시가연구, 24, pp.167~201 (2008), 한국시가학회
  61. 김성진, "記錄文에 대한 想像的 接近의 일례 ―장영실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동양한문학연구, 27(27), pp.5~38 (2008), 동양한문학회
  62. 전계영, "<公無渡河歌> 배경설화에 나타난 ‘白首狂‘’의재해석 가능성과 학생들의 인식 고찰", 어문론총, (59), pp.391~416 (2013), 한국문학언어학회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9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