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부흥 전쟁기 고사비성 전투의 의미
A Meaning of Gosabi Seong Battle during the Reconstruction War of Baek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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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백제 부흥군이 일어난 배경은 일시 단절된 국가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당시 백제는 왕조의 단절이나 국가의 멸망이 아니라 위험한 국가적 상황을 안정시켜나가는 과정이었다. 서기 660년 7월 18일에 백제 조정이 항복한 후 즉각적으로 사비성 재탈환에 나선 것도 이러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백제 부흥군은 사비성 탈환이 늦어짐에 따라 지속적인 대당 항쟁에 필요한 장기적인 근거지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주목받은 곳이 중방 고사성 지역이었다. 이에 서기 661년에 나·당 연합군은 백제 부흥군을 공격하고자 두량이(완주 이서)·고사비성(정읍 고부)·주류성(부안 위금암산성) 등을 공격하였지만, 백제 부흥군은 2만 이상의 신라군을 물리침으로써 백제 남방 지역을 모두 복속하는 등 일시에 세력을 확대하였다. 하지만 백제 부흥군은 심장부인 사비와 웅진 등은 확보하지 못하였고, 이는 나·당 연합군이나 백제 부흥군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를 담보하지 않아 부흥군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였다.
Abstract
The background of reconstruction forces of Baekje was to secure the continuation of broken nation. In that time, Baekje was not in the extinction of a dynasty or the fall of a nation but in the stabilization of the dangerous national situation. In this effort, after the Royal Court of Baekje surrendered, the reconstruction forces immediately tried to recapture Sabi Fortress in July 18, 660. But they expected to secure long-term base for struggle against Tang. So noticed region was the Central Gosa seong. On this, the Silla-Tang Combined Forces attacked Duryangi, old Sabi seong, Juryu seong to attack the reconstruction forces. The reconstruction forces, however, defeated Silla forces over 20,000 and subjugated the southern regions of Baekje. As a result, they extended its power at once. But they didn’t seize the heart of Baekje, i.e. Sabi, Ungjin, etc. This remains unclear a future of the reconstruction forces because the recon- struction forces or the Silla-Tang Combined Forces didn’t win one-sided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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