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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신미통신사 빈례(賓禮) 관련 회화 연구

A Study on the Paintings of Diplomatic Events for Joseon Envoys Dispatched into Tsusima in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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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신미통신사행을 이전 통신사행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통신사의 외교 의례가 에도가 아닌 쓰시마 부중에서 치러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례 장소의 변경을 조선에서는 ‘역지통신’, 일본에서는 ‘역지빙례’라고 불렀다. 통신사행의 규모는 종사관을 제감하고 양사만 파견하여 366명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1764년 제11회 통신사행 이후 무려 47년 만에 성사된 조선통신사의 일본 방문은 시대의 격변, 위기감을 반영하여 일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많은 기록과 회화를 남겼다. 이 글에서는 1811년 통신사행의 공식 일정에 따라 일본 측에서 제작된 통신사 빙례 관련 기록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811년 통신사의 일정은 윤3월 12일 부산포를 출발하여 윤3월 29일에 쓰시마 부중에 도착하였고, 의례를 마친 후 6월 27일 쓰시마 부중에서 발선하여 7월 2일 부산포에 정박하였다. 이때 일본 측에서는 통신사 노정지도와 통신사선의 규모, 그리고 국분사를 개조한 통신사 객관의 구조와 위치를 자세히 그렸다. 1811년 쓰시마 통신사행의 외교 의례는 먼저 에도 사신들이 통신사의 객관을 방문하여 쇼군의 뜻을 대신 전하고 숙공을 베푸는 위로의가 있었으며, 이어서 쓰시마 도주의 저택에서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는 전명의와 관백연향, 쓰시마 도주 저택에서 막부 쇼군의 회답국서를 받는 회답서의가 있었다. 이때 외교 의례를 위해 쓰시마 도주 저택으로 이동하는 통신사 행렬도의 필사본뿐만 아니라 목판본이 쓰시마번에서 제작되어 에도에서 판매되었다. 화면에는 종사관과 마상재 등 통신사행에서 제감 인원은 그려지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현존하는 1811년 통신사행의 인물 복식도는 화권 형식으로 제작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후에 에도에서 모사되기도 하였다. 내용은 외교 문서 교환이나 향응 시에 통신사의 인상과 복식을 위주로 그려졌다. 외교 의례에서 통신사의 복식은 일본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유발시켰는데, 특히 1811년 통신사의 경우 초상과 복식이 본격적인 화권 형식으로 제작되어 기존 통신사행에서 교류 문인 문집에 삽화 형식으로 삽입되던 것과 차이를 보인다. 통신사에 대한 향응은 쓰시마에 도착한 4월 9일부터 4월 13일까지 도주에 의해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후 5월 26일 대마도주 저택에서 관백연향이 행해졌다. 이때 상상관 이상에는 칠오삼미상을 접대하였다. 이는 에도 쇼군의 의례에 제공되던 상차림보다 호화로워 당시 막부와 쓰시마번에서 통신사 접대에 비상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투고일 2014. 12. 23. 심사일 2015. 1. 29. 게재 확정일 2015. 2. 10. 주제어(keyword)외교 의례(diplomatic ritual), 도쿠가와 막부(Tokugawa shogunate), 역지 통신사(Joseon Envoys into Tsusi), 기록화(documentary paintings),일본에서 제작된 1811년 통신사 관련 기록화는 쓰시마번에서 역지 통신사행 빙례 관련 의례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통신사행의 외교 의례를 회화 사료로써 보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높다.

Abstract

Since Shogun Tokugawa Ieharu(1737‒1786) passed away in 1786, the Tokugawa shogunate several times delayed for invite the Joseon Envoys. But Tsusima, has cast a financial bottom line, kept trying to invite Joseon Envoys for over twenty years. In result, Joseon Dynasty sent the Envoys into Tsusima 1811. After 47years, Tsusima managed to put the deal through, and the third envoy and the talented men who get on horses ruled out of the total number of Joseon Envoys. They paid attention to Joseon Envoys and recorded many paintings, which reflected a sense of international crisis into turbulent times. This paper focused on the paintings of diplomatic events for Joseon Envoys into Tsusima in 1811. There are some maps of route, the paintings of vessels Joseon Envoys boarded and the residence remodeled a provincial temple in Tsusima. The progresses of diplomatic events are the banquet for Joseon Envoys to offer comfort at the residence, the event to deliver the diplomatic document of King Sunjo of Joseon to shogunate, the banquet thrown by Shogun Tokugawa and the event to deliver the answer document of Shogun Tokugawa at the provincial capital of Tsusima. There are some roll paintings and wood paints of Joseon Envoys’ parade at that time of diplomatic events. Those paintings made in Tsusima, and sold in Edo. Many Japanese attracted to the costumes of Joseon Envoys, and they expertly painted the figure paintings of Joseon people at the diplomatic events. Those separate color paintings distinguished from the illustrations in some literary works of other times. Joseon Envoys were given a warm receptions and offered dazzling set menu better than Shogun Tokugawa’s at the banquet. The feudal lord of Tsusima spent a great deal of money to order many ceramics used for Joseon Envoys. Some drawings and paintings of set menu showed that the feudal lord of Tsusima had an extreme interest for warm receptions. Those documentary paintings are very important visual data to represent the diplomatic events between Korea and Japan in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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