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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청정(垂簾聽政)과 국왕친정(國王親政) 그 사이: 청년 성종의 정치리더십에 투영된 정희왕후의 공사(公私) 인식

The Interim From Regency Behind the Veil To Direct Government By the King: Borderline Between Public and Private Section Reflecting Young King Seongjong’s Political Lead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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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조선의 성종은 경국대전을 완성시키고 유가적 교의에 충실했던 성왕군주로 평가받는다. 더욱이 부친의 요절과 차남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예종 서거 후 왕위를 계승한 것은 극적 요소를 담고 있기도 하다. 바로 그 점이 국왕 성종의 초기 정치리더십을 결정짓는 필요조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왕대비와 훈구대신들의 정치적 후원과 돌봄의 대상의 되었고, 정치적 기반 없이 곧바로 이념적 군주로 훈육되었기 때문이다. 세조 비 정희왕후는 조선왕조 최초의 대왕대비 섭정, 즉 제도로서 수렴청정을 출발시킨 주인공이다. 먼저 정희왕후는 공적 영역의 참여자로서 독자적인 판단기준과 결정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공한다. 공적 행위자로서 정희왕후는 어린 성종의 후원자라는 역할에 충실한 동시에 민생보존이라는 정치의 기본원칙에 충실했다. 한편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성종의 성년과 함께 종결되고, 청정의 리더십이 국왕성종의 직접적인 정치리더십으로 교체되면서, 성종의 사적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희왕후의 사적 돌봄을 공적 후원의 연장으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정희왕후의 리더십에 내포된 사적 돌봄과 보호에의 강박이 성종으로 하여금 공사 경계 짓기를 혼동하게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결과일지 모른다.

Abstract

King Seongjong of the Joseon Dynasty is evaluated as Sage King who completed the Gyeongguk Daejeon(Code of Statecraft) and devoted himself to the confucian doctrine. But that may have served as a necessary condition to determine the personality and leadership of King Seongjong. Because he was an object of political support and care for the Queen Jeonghui and the entrusted ministers and was immediately disciplined as an ideological monarch without political foundation. Queen Jeonghui was the first Great Queen to start the regency. First of all, Queen Jeongui’s leadership appeared as a public actor making independent judgments and decisions. She was faithful to his role as a public supporter of young King Seongjong while at the same time being faithful to the basic principles of preserving people’s livelihoods rather than political justification. Meanwhile, There is a tendency to rationalize King Seongjong’s private desires and intentions through the channels of Queen Jeonghui's public support. In the end, King Seongjong’s political legacy was decline of public s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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