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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민족기록화전(民族記錄畵展) 고찰

Examination of the 1967 Korean Heritage Painting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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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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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67년 경복궁미술관에서 개최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기록화 전시회를 대상으로 개최 배경과 과정, 후대에 끼친 영향 등을 살펴봄으로써 그동안 정치 선전물로 주로 인식되어 온 민족기록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1967년 민족기록화 제작과 전시는 최초의 시도였던 만큼 모든 역량을 투자해 진행했고 참여한 작가와 작품 규모 역시 이후의 사업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화가들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500~1000호에 이르는 대형 화폭을 처음 다루면서 작가적 역량을 키웠고 이러한 경력을 발판으로 삼아 화단에서 입지를 굳히는 계기를 얻었다고 본다. 다만, 초창기 민족기록화의 주제가 전쟁화에 집중되어 있었고, 두 달이라는 짧은 제작 기간으로 인해 충분한 역사적 고증과 표현 수준을 갖추지 못해 당시 미술계의 비판을 받았고 이러한 사회적 지탄은 작품이 지속적으로 공개되거나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1970년대부터 첫 민족기록화 제작사업에서 노출된 문제를 보완하고자 자문위원회, 고증위원회를 설치해 체계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다는 점, 그리고 추상화가 대세를 이룬 1960년대 화단에 구상화의 중요성과 유효함을 다시 인식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1967년 민족기록화전의 의의를 꼽을 수 있다. 현재로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작품의 현존 여부를 비롯해 화가들의 작업 방식과 경제적 보상, 구체적인 제작 과정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를 보완해 나간다면, 최초의 민족기록화전이 근현대미술사에서 갖는 위상도 한층 선명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shed new light on ethnic record painting, which has long been dismissed as political propaganda, by examining the background and process of the first exhibition of ethnic record paintings held in 1967 at the Gyeongbokgung Palace Museum and its impact on later generations. The production and exhibition of the national documentary in 1967 was the first such attempt, with all efforts concentrated on its execution. In terms of the scale of participating artists and the number of works, it was the most prominent compared to subsequent projects. Artists, receiving overwhelming support, developed their creative abilities while working on large canvases ranging from 500 to 1000 in size. This experience provided them with an opportunity to solidify their standing in the art world. However, it is worth noting that the early themes of ethnic documentation were centered on war, and the brief two-month production period resulted in insufficient historical verification and compromised artistic quality. From the 1970s onward, the establishment of advisory and verification committees to address the issues revealed during the first ethnic documentation project can be considered a positive outcome of the 1967 Ethnic Documentation Exhibition. By supplementing research on the current existence of works, the working methods of artists, their economic compensation, and specific production processes, the significance of the first National Record Painting Exhibition in 1967 can become even clearer within the history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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