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초기 정몽주·길재 표창과 그 의의
朝鮮朝初期襃獎鄭夢周·吉再以及其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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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392년(공양왕 2) 고려가 망할 무렵 이성계 중심의 혁명세력에 맞서던 문하시중 정몽주는 이방원의 수하 조영규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된다. 그리하여 이씨의 조선왕조는 쉽게 열렸으나 제1·2차 왕자의 난으로 인하여 1400년(정종 2) 이방원은 ‘世弟’의 지위에 오르며 곧 조선의 제3대 군주로 등극한다. 그런데 그가 동궁에 있을 때에는 吉再를 임금께 추천하여 관직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고려에 벼슬했던 길재는 ‘不事二君’의 명분을 내세워 거부하니, 방원은 그에 공감하며 결코 함께할 수 없는 관계로 정리하면서도 臣道의 모델로 여겼다. 그 후 곧 그는 즉위하면서 내외의 政情 불안을 극복하고자 求言 교서를 내렸는데, 이를 계기로 나타난 권근의 상소문에는 綱常의 정립을 위해 정몽주와 길재를 표창해야 한다는 제의가 있었다. 이것은 당대의 큰 유학자로서 애국충절의 모범 사례로 그렇게 지목할 수도 있는 바이지만, 태종에게는 매우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과거의 가장 큰 政敵이었고 또 그 직전까지 亂臣으로 평가되던 정몽주를 긍정해야한다는 딜레마로부터 지금 또 자기를 버린 길재를 추존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종은 장고 끝에 결국 권근의 건의를 따라 정몽주를 복권시켜 벼슬을 추증하고 길재의 절의를 높이 평가하는 결단을 보였다. 이를 배경으로 그 표창의식은 그 후기에 있어서도 연면히 계속되었다. 이 글은 조선조 초기에 전개된 그와 같은 표창의 역사적 사실을 면밀히 살피면서 그 내재적 意義를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➀ 태종 이후 국가에 대한 일체감 제고의 臣道觀 정립을 위한 최적의 모델로서 정몽주와 길재의 경우가 활용되고 있었다는 점, ➁ 그들을 통한 충의·충절의 가치 추구는 시공의 폭을 넓히면서 국가 운영에의 정신적 동력으로 삼아갔다는 점, ➂ 정몽주·길재에 대한 추존의식은 정치적 의미뿐만 아니라 유교국가로서의 사상적 기반을 다지는 학맥 설정의 연원으로 작용할 수 있게 했다는 점 등을 확인하였다.
Abstract
14世紀末高麗門下侍中鄭夢周(1337∼1392)是新儒學者而反革命派中之第一人, 然而李成桂五男李芳遠(1367∼1422)屬人趙英珪殺害他了. 然後, 高麗革命的中堅力量擁立李成桂建立朝鲜王朝. 1400年李芳遠登極朝鮮第三代君主了. 他在世弟時期推擧國學同僚吉再(1353∼1419)於定宗, 而吉再由‘忠臣不事二君’之義拒絶他的薦擧. 因此 鄭夢周·吉再和朝鮮王朝的關係几近决裂. 然而, 從鄭夢周·吉再之忠義精神 權近提請襃獎他們. 因爲王朝守成期之綱常定立. 但是, 于君主太宗, 這介問題是很難的. 權近的提請有‘過去革命期之政敵成今天的同志’之處. 太宗琢磨了好長时間終于想出了襃獎的決斷. 因此, 鄭夢周·吉再從反革命反朝鮮起恢復了高麗忠臣的位相. 這樣的表彰事業一直持續以至他們的後孫錄用. 這些窮極意義如此. 1) 在這樣的襃獎下, 定立端正的臣道觀 而培養得到愛國忠誠的人才. 2) 朝鮮朝百姓把忠義德目認爲最上道德價値. ‘保持對國家的義氣’問題 是國家運營上精神的核心動力. 3) 高麗人鄭夢周·吉再是兩个大儒學者推尊 而且朝鮮朝儒敎學脈淵源. 于是, 鄭夢周·吉再襃獎事業會造成了朝鮮朝政治文化發展, 儒敎思想之道學的展開 和百姓一般之義理精神提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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