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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의 ‘사(士)’ 개념 비교 고찰 — 선비⋅신사⋅무사 개념의 형성을 중심으로 —

韓中日三國の「士」槪念の比較考察 – ソンビ⋅紳士⋅武士概念の形成を中心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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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초록

선비(文士)⋅신사(紳士)⋅무사(武士)는 그 개념이 처음 생겼을 때 매우 애매하였다. 지칭하는 대상도 미미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강해지고 그 대상이 세력화되었다. 선비의 경우는 고려시대(11세기경)에 학자들 사이의 ‘선배’라는 존경어로부터 시작하였으며, 무사는 헤이안 시대 말엽(10세기경) 동일본 지역의 무사들로부터 시작하였다. 한편 중국의 신사는 송나라 때의 사대부 전통을 이어받은 명나라 초기 향촌의 지식인들이 그 시작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선비⋅무사⋅신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각 사회의 중요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선비⋅신사⋅무사는 그 개념과 계층의 형성에 주자학이 깊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에는 고려 말엽에 주자학이 전래되고 조선 초에 숭유억불정책에 의해서 주자학이 국교와 같은 위상을 확보하였는데, ‘선비’ 개념은 바로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선배’ 개념이 ‘선비’ 개념으로 바뀌고 선비로서의 자긍심이 강했던 것은 바로 주자학자들의 자의식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 일본에서도 에도시대 초기에 조선의 주자학, 특히 퇴계학이 전래되었는데, 덕목과 윤리를 강조하면서 새롭게 정립된 ‘무사’ 개념은 그러한 주자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중국의 신사 역시 기본적으로 주자학을 바탕으로 한 송대 사대부의 정신적인 영향을 받았다. 선비⋅신사⋅무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각 국의 사회와 함께 변화, 성장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선비⋅무사⋅신사 개념은 근대에 들어와 형성된 것으로 실지로 전통시대에 이들 개념은 매우 역동적으로 변화, 발전하였다. 선비는 조선시대(1392-1897) 기간 중에 형성되었는데 조선시대는 남북으로 외세의 침략은 있었으나 왕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선비’가 ‘무사’나 ‘관료’적인 방향이 아니라, 문사(文士)적인 방향으로 발전해나간 것은 이러한 사회상황과도 밀접히 관련된다. ‘무사’는 그것이 형성된 뒤에 가마쿠라, 무로마치, 전국 시대 등 무사정권을 거쳐서 에도시대(1603-1867)에 이르렀다. 이들 무사는 에도시대에 새로 들어온 유학을 적극적으로 흡수하고 ‘사농공상’의 계층적 신분질서를 자신들의 입장에서 적극 대응함으로써 다른 계층에 ‘사(士)’적인 지위를 빼앗기지 않고, 자신들의 것으로 쟁취하는데 성공하였다. 중국에서 ‘신사’의 경우도 명청시대(1368-1911)를 거치면서 향촌의 권력자이면서 지식인계층으로서 자기들의 위상을 확보하였다. 그들은 청나라 중기, 말기를 거치면서 그들의 향촌 지배는 더욱 강화함으로써 관료적인 성격이 더 강해졌다. 선비⋅신사⋅무사는 전통시대가 지난 뒤, 근대에 들어와서 그 의미가 재평가되고 미화되었다. 선비의 경우는 조선이 멸망하고 일본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유학과 함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선비’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선비정신’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선비’에 대한 미화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무사에 대해서도 서양의 기사도와 대응하여 ‘무사도’라는 이상적인 이념이 제시되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무사’보다 더 이상화된 모습이 제시되었다. 중국의 ‘신사’에 대해서는 선비나 무사와 같이 그 대상 및 개념에 대한 전면적인 미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신상(紳商)’에 대한 재조명, 청말의 유신 지사들에 대한 재평가, 나아가 신사들의 도덕적, 정신적 기반이 되었던 주자학과 유학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는 점 역시 미화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Abstract

ソンビ(文士)⋅紳士⋅武士は、その概念が始めに発生した時には、その対象が曖昧であった。しかし時間が経つにつれて、それが明確になり、それらの勢力も大きくなった。ソンビの場合は高麗時代に学者達の間の「先輩」という尊敬語から始まり、武士は平安時代末葉、東日本地域で活躍しはじめた「武士」から始まる。一方中国の紳士は、宋時代の士大夫伝統を受け継いだ明初の郷村の知識人達がその始であった。ソンビ⋅紳士⋅武士は、その概念や階層の形成に朱子学が深く影響を及ぼした。朝鮮には高麗末葉に朱子学が伝来し、朝鮮初期には崇儒抑仏の政策によって朱子学が国教のような地位を確保した。ソンビ概念はそういう環境から影響を受けた。日本でも江戸時代初期に朝鮮の朱子学、特に退渓学が伝来した。道徳や倫理を強調した新しい「武士」概念はそういう朱子学からの影響である。中国の紳士もやはり基本的には、朱子学を土台にした宋代の士大夫の精神的な影響を受けていた。ソンビ⋅紳士⋅武士は、日中韓の社会の変化と共にその概念が発展してきた。ソンビが文士的な方向に発展して来たのは、朝鮮王朝が比較的に平和な状態で政権を維持してきた社会状況と密接に関連する。武士は、鎌倉、室町、戦国時代、そして江戸時代という武士政権を経ながら新しく入ってきた儒学を積極的に吸収し、「士農工商」の階層的な身分秩序の中で「士」の地位を勝ち取った。中国の「紳士」も、明清時代を経ながら郷村の権力者として、そして知識人階層として自分たちの地位を確保し、郷村支配をより一層強化していた。これによって彼らの官僚的な性格が増していた。ソンビ⋅紳士⋅武士は、各社会の近代社会の形成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朝鮮王朝が没落したのは、朝鮮社会の最高知識人でありリーダーであったソンビ達の柔弱な性格と深く関連する。日本の武士は、陽明学的な実践を重視して兵法学と西洋の実用的な学問を積極的に受け入れた。近代日本が積極的に武装し海外に植民地を切り開き、政治、経済、軍事的に発展したのも日本文化の「武士的」伝統のお陰であろう。一方、中国の紳士は清の満洲族の勢力が強い時には郷村の権力を共有するのに終わっていたが、その勢力が弱くなり社会改革を推進すると、積極的に自分の利権を獲得した。後に彼らは結局、清朝を滅び、新しい共和政府の成立に大きく貢献する。ソンビ⋅紳士⋅武士は、伝統時代が過ぎてから、近代に入って、その意味が再評価され美化された。ソンビの場合は、朝鮮が滅亡して日本の植民地になり一時非難の対象となった。しかし1960年代以後、韓国社会が発展し始めてからソンビに対する再評価がなされた。日本の武士に対しても、西洋の騎士道と対応し「武士道」という理想的な理念が提示され、歴史的に存在した「武士」より理想化された姿が提示された。中国の紳士に対しては、ソンビや武士のようには全面的な美化はされていなかったが、紳商に対する再照明や、清末の維新志士に対する再評価、そして進んでは紳士達の道徳的、精神的基盤になっていた朱子学や儒学に対する再評価がなされたという点は、美化の一環として見做すことができ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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