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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자들의 양명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 검토(1) —‘尹根壽’와 ‘陸光祖’ 간의 「朱陸論難」을 중심으로—

The principle of human nature scholar of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critical awareness about the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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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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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 조선에는 『전습록』의 유입과 더불어 양명학(陽明學)이 전래되었다. 이 시기에는 주자학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양명학은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양명학이 조선유학사에서 자리 잡을 수 없게 된 이유 가운데 이황의 양명학에 대한 배척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양명학이 전래된 이후에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남긴 양명학 비판 문헌을 통해 양명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양상을 검토하고, 궁극적으로는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양명학 비판의 성격이 어떻게 변모되는지, 또 그 변모의 흐름을 도출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을 위해 본고에서는 윤근수(尹根壽, 1537∼1616)에 주목하여, 그의 문헌에서 드러나는 양명학 비판의 논조를 확인하였다. 조선의 학자 윤근수(尹根壽, 1537∼1616)와 명나라의 육광조(陸光祖, 1521∼1597)가 만나 논변을 하고 이를 저술하여 남긴 「朱陸論難」을 연구 텍스트로 선정하고, 이를 도통관, 심성관, 학문관으로 나누어 둘의 의견을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윤근수는 주희(朱熹, 1130∼1200), 진덕수(眞德秀, 1178∼1235), 허형(許衡, 1209∼1281)으로 이어지는 도통을 제시하고 있으며, 육광조는 맹자(孟子), 육구연(陸九淵, 1139∼1193), 왕수인(王守仁, 1472∼1528)으로 이어지는 도통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윤근수와 육광조는 도통관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학문 성향과도 연관된다. 심성관에서는 주자학적 학문관과 양명학적 학문관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에 대한 이견을 통해 인심도심의 정의와 두 사람의 인심도심에 대한 관점의 동이(同異)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윤근수는 인심과 도심은 별개라는 주희의 입장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하여 육광조는 인심을 곧 도심으로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16자 심법에 나오는 문장을 풀이함에 있어서 육광조는 순임금이 말하신 ‘人心惟危’에서 危의 풀이에 대하여 고명(高明), 광대(光大)라고 한 반면, 윤근수는 이와 같이 해석한 전례(前例)가 없음을 이유로 사사로운 의견으로 왜곡하였다고 육광조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육광조는 주희의 전례를 들어서 윤근수에게 증명하였다. 마지막으로, 학문 방법의 차이에서는 윤근수는 독서궁리(讀書窮理)와 함양용경(涵養用敬)의 학문 방법을 추구하였고, 육광조는 묵식본심의 학문 방법을 추구하여 무엇보다 본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윤근수가 서책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을 강조한 반면, 육광조는 진헌장(陳獻章, 1428∼1500)이 말한 문장을 제시하며 서책을 통한 공부법보다 본심을 묵묵히 알게 되고서 그것을 서책으로 증명하는 학문 방법을 주장하였다. 이 또한 주자학적 학문법과 양명학적 학문법의 차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윤근수가 보낸 편지의 ‘끝내 서로 다른 의견이 합치되지 못하였다’라는 부분을 통해 논쟁의 결론을 파악하였다. 윤근수는 양명학에 대해, 특히 왕수인과 관련해서는 일관되게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주륙논란」을 통하여 윤근수의 양명학 비판 내용과 양상을 고찰해 보았다. 이를 통해서 양명학이 유입된 초기에 이황(李滉)이 양명학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거나 비교적 단순한 비판 양상을 보인 것에 비해, 윤근수는 철리적 용어인 ‘치양지’를 언급하고, 인심과 도심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할 만큼 양명학에 대한 이해가 다소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In the early 16th century, Yang Ming Studies was introduced to Joseon along with the introduction of traditional Korean rockfish. At this time, Joseon was economically and socially chaotic due to the war, and politically, it was a time of confusion in and out of the country. Yang Ming Studies became an object of exclusion because it was firmly established during this period. Lee Hwang's exclusion from Yang Ming Studies is the biggest reason Yang Ming Studies has become unable to establish himself in the history of Joseon Confucianism. Yoon Geun-soo (1537∼1616), a scholar of Joseon, and Yook Kwang-jo (1521∼1597) of the Ming Dynasty met and made an argument and wrote the article in the research text, which was divided into the View of Tao-genealogy, View of Mind, and View of Academic. Yoon Geun-soo presents a conduit leading to runners, Jin Deok-soo and Heo Hyung, and it can be confirmed that the Yook Kwang-jo has a Taoist perspective leading to Mencius, Yook Gu-yeon and Wang Su-in. This shows that Yoon Geun-soo and Yook Kwang-jo are very different from each other. This is also related to academic tendencies. Finally, in the difference between the academic methods, Yoon Geun-soo pursued the academic methods of reading and Hamyang Yong-kyung, while Yook Kwang-jo confirmed that he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the main mind above all else by pursuing the academic methods of the Muk-sik-sim. In addition, while Yoon Geun-soo emphasized the study based on the book, Yook Kwang-jo presented the sentence that Jin Hun-jang said and suggested the academic method of proving it with the book after learning the real intention rather than the study method through the book. This is also the part where the difference between the runner's and the biographical method is known. Yoon Geun-soo can confirm the conclusion of the dispute by saying in a letter sent by Yook Kwang-jo, 'Different opinions have failed to come together at the end.' Yoon Geun-soo confirmed that he consistently maintains a critical view of Yang Ming Studies. especially regarding Wang Su-in. I found out about Yoon Keun-soo's criticism of Yang Ming Studies through 「Debate between Zhu & Lu」 And through this, we were able to confirm the critical tone of Yang Ming Studies by Joseon's biblical scholars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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