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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31년(1449) 刊 『舍利靈應記』 所載 精勤入場人 분석

The Analysis of Jung-gŭn Ipjang-in(精勤入場人) in 'Sari-ryoung-ung-gi(舍利靈應記)' Issued in Se-jong 31(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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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이제까지 모든 ‘舍利靈應記’ 연구자들은 ‘사리영응기’가 1450년에 간행된 것으로 이해하여 왔다. 연구자들이 간행 연대를 1450년으로 잡은 것은 ‘上之三十有一年秋七月十九日癸卯’라는 冒頭의 언급 때문이었는데, ‘上之三十有一年’을 세종 31년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上之三十有一年’은 세종 31년이 아니라, ‘上께서 즉위하신지 31년이 되던 해’로 해석해야 하고, ‘사리영응기’가 官版本인 것으로 보아 세종 31년(1449)에 출판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리영응기’는 文昭殿 佛堂 창건 경찬회에서 舍利가 출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었다. 왕실 선조의 명복을 비는 불당 건립에 세종은 禪位까지 언급할 정도로 儒臣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세종의 입장에서는 불당 건립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고, 이는 사리의 출현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사리영응기’에서 세종은 堯舜이나 三王五帝와 같은 전설적인 聖王으로 칭송되었다. ‘사리영응기’의 묘미는 舍利라는 단순한 祥瑞의 출현을 묘사한 데에 있지 않다. ‘사리영응기’에서 조선의 진정한 祥瑞는 사리가 아닌, 부처님이 보내주신 聖君 세종의 정치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리영응기’의 뒷 부분에는 총 261인의 精勤에 참여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僧侶․大君․內侍․文臣․帶西班職人․賤人으로 나뉘어 진다. 이들 가운데 60%에 달하는 사람들은 樂工, 輿臺, 僕隸 같은 천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들 천인들도 모두 당당하게 ‘臣’이라 칭하고 있고, 더 나아가 大君이나 文臣들과 나란히 契를 맺고 있다. 천인과 함께하는 契는 수양대군이 주도한 것이었다. 수양대군은 직접 慶讚會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契文을 지었을 뿐 아니라, 참여 인물들에게 이름을 써서 軸으로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賤人들은 이에 감동하였고, 후에 癸酉靖難에 직접 참여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세조의 집권을 도왔다. 승려를 제외한 전체 精勤人의 16.7%인 35人이 세조대 공신으로 책봉되었는데, 이는 세조와 精勤人의 특별한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Abstract

Every researcher of 'Sari-ryoung-ung-gi(舍利靈應記)' has understood that it was issued in 1450. They have judged it to be published in 1450 due to the beginning reference '上之三十有一年秋七月十九日癸卯'. In other words, they interpreted '上之三十有一年' as King Se-jong 31(1449). '上之三十有一年' is, however, should be interpreted not 'King Se-jong 31' but '31 years after the enthronement of King Se-jong'. And we should judge that it was issued in King Se-jong 31(1449) by reason of the government edition〔官版本〕. 'Sari-ryoung-ung-gi' was written in commemoration of the appearance of Buddha's bones in the celebration for Moonsojeon buldang(文昭殿 佛堂) establishment. King Se-jong had been attacked to abdicate due to the foundation of Buddhist temple praying for Royal ancestors. On his situation, King Se-jong needed to show off his decision to establish Buldang was right and it was expressed as forging the appearance of Buddha's bones. King Se-jong was admired as a sage king like YoSoon(堯舜) or Samhwang-oje(三皇五帝) in 'Sari-ryoung-ung-gi' The best point of 'Sari-ryoung-ung-gi' is simply not the description of good omen〔祥瑞〕, Sari. 'Sari-ryoung-ung-gi' had shown that the real 祥瑞 of Choson is not Sari but the reign of a sage king, Se-jong who was sent by Buddha. 'Sari-ryoung-ung-gi' recorded 261 persons who participated in Jung-gŭn(精勤). They were classified into monks〔僧侶〕, princes〔大君〕, eunuchs〔內侍〕, civil ministers〔文臣〕, officials holding military duties〔帶西班職人〕, humble men〔賤人〕. Although 60% of them were humble men as court musicians〔樂工〕, servants〔輿臺, 僕隸〕, they were called as retainers〔臣〕and organized a Gye〔a mutual aid society, 契〕with princes or civil ministers, moreover. Soo-yang dae gun(首陽大君) took the initiative to make a Gye with humble men. He drew the scenes of celebration by himself and wrote rules〔契文〕and distributed a roll of name to the participants, also. Humble men were moved by his kind act and personally took a part in the rebellion〔癸酉靖亂〕or helped him grasp reign by various means in reward for his conduct. 35 persons, 16.7% of whole Jung-gŭnin(精勤人) without monks were invested as meritorious retainers and it means the special relationship with King Se-jo and the Jung-gŭnin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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