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윤씨 문중 문헌록 연구
A Study On A Record Of Family Documents Of Haenam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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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해남윤씨 문중, 특히 녹우당에는 많은 서화와 고서 및 고문서 등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중 특이한 점은 조상들의 행적을 주제별 또는 인물별로 정리하여 엮어놓은 필사본 典籍이 몇 종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정리되어 있어서 해남윤씨 인물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다른 문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해남윤씨문헌』과 『당악문헌』인데, 이러한 문헌은 비록 1750년대에 와서야 첫 완성을 보았지만,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계속적인 수집과 보완작업이 있어왔음을 녹우당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참여한 작자는 이름이 밝혀진 경우도 있지만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한편 남아있는 圖署印이나 필적 등을 토대로 하여 참여자를 추정할 수 있으니, 오늘날 녹우당이 많은 전적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자료 수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이것을 후손들이 잘 이어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와 같은 전적을 토대로 하여 비교적 방대하고 체계적인 文獻錄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해남윤씨 후손들은 문헌록을 계속해서 보완하면서 조상들의 행적을 잊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하였고, 이러한 원동력이 있었기에 여러 가지 시대적 난관을 극복해내고 오늘날까지 호남의 명문가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Abstract
Haenam Yoon family, especially Nokwudang has many pictures, old books and old documents. Among those, it's unique that there are several manuscriptal documents which organize ancestors' activities by subjects or persons. With organized for generations, these are important materials to let us know persons of Haenam Yoon family, and other families have few materials like these. The representative materials among those is Documents of Haenam Yoon and Dangak documents. Although documents like these were completed for the first time in 1750s, it can be known by old documents in Nokwudang that to collect and to supplement materials has been continued before and also since then. The number of unknown persons to join in making documents is much more than the number of known persons. But it's possible to guess who joined in the work based on remained stamps of pictures. Because these persons positively took part in collecting materials and their descendants have preserved those, it can be said that Nokwudang has many documents today. Based on these documents, an enormous and systematical record of documents could be made. Haenam Yoon's descendants have been making an constant effort not to forget their ancestors' activities with supplementing a record of documents, and an effort like this became the motive power to overcome all kinds of periodical difficulties and to remain a famous family at Honam until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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