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들의 경제생활-간찰과 일기를 통해본 일반적고찰
The Economic Life of the Gentry in Country Villages in the Joseon Dynasty -A General Study from Letters and Jour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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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조선시대 향촌(鄕村) 양반층의 경제생활을 검토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향촌 양반들은 중소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을 가졌고, 따라서 이들의 삶은 풍요로웠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가난에 대한 걱정과 빈곤에 대한 우려들이 일기나 간찰 자료에서 자주 확인된다. 이 같은 괴리현상은 무엇보다도 향촌 양반들의 경제생활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문제는 조선후기 향촌 양반들 대부분의 존재형태라 할 수 있는 몰락양반(沒落兩班)이나 잔반(殘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향촌 양반들의 경제생활은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중소지주, 혹은 그 이상의 경제적 기반을 가진 대표적인 몇몇 양반가문의 구체적인 경제생활을 주로 간찰과 일기 자료를 통해 검토하였다. 그 결과 이러한 경제기반에도 불구하고 흉년에는 어느 누구도 가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굳이 풍요로웠다고 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풍년이 들 경우’라는 단서가 붙어야 할 상황이었다. 조선후기 향촌 양반층의 일반적인 존재형태로 보여 지는 몰락양반이나 잔반이란 곧 경제적으로 중소지주적 기반을 상실한 경우였고, 따라서 이들의 삶은 풍흉에 관계없이 더 자주 혹은 늘 가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다시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나아갈 수도 있었고, 동성마을의 족적 기반을 상실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양반으로서의 사회 신분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도 하등의 문제가 없었다. 이들은 비록 경제적 몰락이나 과거ㆍ관직으로부터 소외되었다 하더라도 종가(宗家)와 종손, 또는 동성마을 구성원들을 통해 그들의 사회ㆍ신분적 지위를 보장받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양반으로서 지위를 상실하여 일반 백성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도 아니었고, 또한 양반관료나 지주와 이해관계를 달리하면서 기본적으로 농민층의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었던 존재도 결코 아니었다. 이 연구의 궁극적인 관심은 양반층의 ‘가난’이나 ‘빈곤’이 어디에서 원인하는 것인지, 어떻게 극복ㆍ대응해 나갔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함에 있다. 이 연구는 이를 위한 기초적인 작업이다.
Abstract
This study reviewed the economic life of the gentry in country villages (Hyangchon, 鄕村) in the Joseon Dynasty. In general, the gentry in country villages in the Joseon Dynasty had financial foundations as a small and medium landowner so that they were assumed to be have a rich life. However, on the other hand, the journals and letters have often found the entirely different concerns about poverty and fears for poorness. After all, such a gap refers to that the economic life of the gentry in country villages itself has never been studied. This situation also applies to the collapsed gentry (沒落兩班) or degraded gentry (殘班), who can be regarded as the most common form of the gentry in country villag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for the economic life of the gentry in country villages, the study reviewed the specific economic life of several representative gentry families, who were the typical small and medium landowners or had stronger financial foundations, using the letters and journals. According to the review, no one was able to get away from poverty in a bad harvest, despite such strong financial foundations. If the gentry had a rich life, they should be at least ‘in a good harvest.’ The collapsed gentry or degraded gentry, who appeared as the common form of the gentry in country villag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lost the economic base as a small and medium landowner, so that they were forced to face poverty more often or all the time, regardless of yields. However, they were allowed to become government officials through the national examination, and had no problems to maintain their social status as gentry if they did not lost their legacy foundations in their lineage villages. They did not have huge problems in getting their social status and position guaranteed by the head family, the eldest son of the head family or the members of the lineage villages, although they experienced financial collapse or were isolated from national examination or government services. In this regard, they were not the commoners who lost their status as gentry, nor those who were basically on the side of the farmers with different interests from the government official-gentry or landowners. The ultimate goal of this study was to identify the origin of ‘poorness’ or ‘poverty’ of the gentry and how they overcame and responded. This study is the basic work for the ultimate purp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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