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조선시대 詞訟에서의 誤決과 再訟

Mistrial and Retrial procedures for Private lawsuits in the Joseon Dynasty era

0

조회

0

다운로드

1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소송을 適正하게 決折하지 못한 관원을 처벌하는 誤決員吏決罪法이 제정된 것은 1405년(태종 5)이다. 조선시대는 誤決을 昏迷誤決과 知非誤決로 구분하였다. 소장을 접수한 송관이 眞僞分揀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판결을 그르친 것이 昏迷誤決이며 元隻의 强弱을 변별하여 畏强淩弱하는 게 知非誤決이었다. 양자는 결과적으로 똑같이 그릇된 決折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과실범인 昏迷誤決과 고의범인 知非誤決에 대해 決罪를 달리하였다. 『經國大典』은 誤決에 대한 呈訴를, 사안에 따라 ‘즉각 다른 관사에 제소하는’ 卽訴他司하는 경우와 판결한 堂上官 및 房掌이 ‘교체된 뒤에 다시 제소할 수 있는’ 遞代更訴하는 경우의 둘로 구분하였다. 父子·嫡妾·良賤 分揀과 같이 情理에 迫切한 일은 卽訴他司하여 신속히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풀도록 하였으나 토지·노비·전택 등과 같은 일반적인 사안은 遞代更訴하여야 했다. 이처럼 전답·토지·노비 소송의 경우 이미 판결하면 訟官이 遞代하기 전에 更訴할 수 없기 때문에, 16세기 들어 訟官을 忌避하는 歸咎訟官 풍조와 더불어 송관 역시 소송을 回避하고 移訟하는 移送他司 풍조가 성행하게 되었다. 「1535년 청하관 결송입안」은 조선시대 詞訟에서 소송의 이상인 적정성, 공평성, 신속성이 반영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고 申淑은 1차 판결한 榮川官의 결절이 법률적용과 사실인정의 양면에서 잘못되었음을 변론하였다. 經國大典 규정에 따라 故縣監 趙孟文의 5女(壻)사이에 부모의 재산을 平均分給하지 않았으며, 榮川官이 피고 金克剛이 現納한 위조문기를 제대로 詳察하지 않고 決折하였기에 落訟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건 소송의 再訟관은 淸河官이었다. 그런데 再訟 관할법원인 청하관과 1심 관할법원인 榮川郡이 같은 등급의 법원이었다. 조선시대 소송에서 2차 판결은 다른 기관 또는 새로 부임한 관리 등에 의해 내려졌는데, 1차 판결 기관과의 서열은 없었다. 즉 審級을 ‘소송사건을 상이한 계급의 재판소에서 반복 심판하는 경우 재판소 사이의 서열’이라고 할 때, 조선시대 詞訟에는 오늘날의 상급심과 하급심이라는 심급개념은 없었던 것이다.

Abstract

Mistrials during the Joseon Dynasty era were considered to be either Hon-mi-oh-gyeol(昏迷誤決) or Ji-bi-oh-gyeol(知非誤決). Despite their consideration as mistrials, sanctions against the governor imposed by the judicial system differed on the basis of whether it was negligent or deliberate.『Gyeongguk daejeon(經國大典)』stipulates two options for filing a suit for retrials. The first is to take the suit for retrial immediately in a different jurisdiction and the second is to take the suit to a new governor who replaced the governor responsible for the mistrial. However, if the subject of the original lawsuit related to agricultural land or ownership of slaves, these suits could only be brought to the new governor and could not be filed in a different jurisdiction. As a result, beginning in the 16thcentury, parties in the mistrial would tend to recuse the governor who oversaw the mistrial. The historical text『1535 Chung-ha-guan Gyeol-song-ip-ahn(1535年 淸河官 決訟立案)』describes the core trial principles of appropriateness, fairness and promptness. The text is a written decision of the court’s retrials which reflects these principles held in the “Chung-ha-guan”. However, the “Chung-ha-guan”, which has principal jurisdiction over retrials, were at the same level as the trial court “Young-chun-gun(榮川郡)”. Therefore, no hierarchy existed among these courts during the Joseon dynasty.

참고문헌 (47)

  1. "書經", ~
  2. "太宗實錄", ~
  3. "世宗實錄", ~
  4. "睿宗實錄", ~
  5. "成宗實錄", ~
  6. "中宗實錄", ~
  7. "經國大典", ~
  8. "決訟類聚補", ~
  9. "受敎輯錄", ~
  10. "各司受敎", ~
  11. "大明律", ~
  12. "大明律集解附例", ~
  13. 仁井田陞, "중국법제사 연구-형법편" (1959)
  14. 朴秉濠, "韓國法制史攷" (1974), 법문사
  15. 朴秉濠, "傳統的 法體系와 法意識" (1972),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16. 朴秉濠, "근세의 법과 법사상" (1996), 진원
  17. 韓㳓劤, "經國大典 註釋篇" (198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8. 韓相權, "朝鮮後期 社會와 訴冤制度" (1996), 일조각
  19. 鄭東潤, "民事訴訟法" (2005), 법문사
  20. 韓國學振興院, "增補 慶尙道先生案(상)" (2005)
  21. 티모시 브룩, "능지처참: 중국의 잔혹성과 서구의 시선" (2010), 너머북스
  22. 이시윤, "新民事訴訟法" (2016), 박영사
  23. 朴秉濠, "韓國文化史新論" (1975), 중앙대
  24. 리종범, "대전속록의 편찬과 그 법제사적 의의" (1987), 력사과학
  25. 文叔子, "朝鮮前期 無子女亡妻財産의 相續을 둘러싼 訴訟事例", 고문서연구, 5 (1994)
  26. 文叔子, "의자녀와 본족간의 재산상속분쟁-1584년 학봉 김성일의 나주목판례 분석-", 고문서연구, 8 (1996)
  27. 文叔子, "조선시대 생활사" (1996), 역사비평사
  28. 金景淑, "18세기 후반 奴婢爭訟의 事例分析-豊山柳氏 古文書를 중심으로", 고문서연구, 8 (1996)
  29. 김경숙, "1578년 慶州 驪州李氏 李浚家의 奴婢決訟立案", 古文書硏究, 23, pp.243~262 (2003), 한국고문서학회
  30. 김경숙, "15세기 정소(呈訴) 절차와 관찰사의 역할", 역사와 현실, (59), pp.69~99 (2006), 한국역사연구회
  31. 金景淑, "19세기 향촌 사대부가의 山訟 실태와 滯訟-潭陽 善山 柳氏家 소장 고문서를 중심으로-", pp.86~ (2017), 호남사학회
  32. 全炅穆, "朝鮮後期 山訟 硏究 : 18·19C 古文書를 中心으로", 박사, 사학, pp.1996
  33. 全炅穆, "산송을 통해서 본 조선후기 司法制度 운용실태와 그 특징", 법사학연구, 18 (1997)
  34. 沈羲基, "18세기 초 安東府 田畓決訟立案의 法制的 分析", 고문서연구, 9⋅10 (1996)
  35. 심희기, "조선시대 詞訟에서 제기되는 문서의 眞正性 문제들", 古文書硏究, 46, pp.91~115 (2015), 한국고문서학회
  36. 임상혁, "조선전기 민사소송과 소송이론의 전개", 박사, 민사소송법, pp.2000
  37. 임상혁, "1583년의 한 訴良事件과 壓良爲賤-允元·林慶秀 소송문서의 분석을 중심으로", 古文書硏究, 21, pp.99~130 (2002), 한국고문서학회
  38. 任相爀, "16세기 한국 고문서 연구" (2004), 아카넷
  39. 임상혁, "‘1586년 이지도?다물사리의 소송으로 본 노비법제와 사회상", 법사학연구, (36), pp.5~38 (2007), 한국법사학회
  40. 임상혁, "1583년 김협·고경기 소송에서 나타나는 법제와 사회상", 古文書硏究, 43, pp.131~155 (2013), 한국고문서학회
  41. 정긍식, "1517년 安東府 決訟立案 분석", 법사학연구, (35), pp.5~40 (2007), 한국법사학회
  42. 한상권, "조선시대 소송과 외지부(外知部) ― 1560년 「경주부결송입안(慶州府決訟立案)」 분석 ―", 역사와 현실, (69), pp.255~292 (2008), 한국역사연구회
  43. 한상권, "16세기 여주이씨 노비소송과 議送", 古文書硏究, 48, pp.49~101 (2016), 한국고문서학회[DOI]
  44. 한상권, "公罪와 私罪", 법사학연구, (53), pp.7~37 (2016), 한국법사학회
  45. 한상권, "조선시대 소송에서의 忌避와 回避", 古文書硏究, 49, pp.1~26 (2016), 한국고문서학회
  46. 한효정, "소송을 통해 본 17세기 노비횡탈 양상 -해남윤씨가(海南尹氏家) ‘안심(安心)’자녀 소송 문서를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87), pp.367~394 (2013), 한국역사연구회
  47. 이혜정, "16세기 어느 도망노비 가족의 생존전략 - 1578년 노비결송입안(奴婢決訟立案)을 중심으로", 인문논총, 72(4), pp.153~182 (2015), 인문학연구원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2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