擧業을 통해 본 明末의 科擧와 學問
虚業からみた明末の科挙と学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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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에서는 과거공부, 혹은 시험의 답안을 의미하는 ‘擧業’을 가지고 명대의 과거와 학문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명대의 관리등용제도는 사실상 科擧로 일원화되어 있었다. 이는 결국 초야에 호걸이 묻혀있는데 조정에는 유능한 관리가 부족한 사태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隆慶․萬曆 경부터였다. 명대의 거업은 正德․嘉靖에 전성기를 맞이한 이후, 隆慶․萬曆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天啓․崇禎에는 타락의 극에 이르렀다고 말해진다. 이러한 거업의 변화는 당시의 학문적 동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정덕․가정부터 시작되는 양명학의 유행은 마침내 거업에도 영향을 미쳐. 융경․만력 초년부터 주자학의 권위를 동요시켰다. 이로 인해 양명학을 비롯하여 제자백가, 불교, 도교 등 그때까지 이단시되었던 사상들이 거업에 도입되는 사태가 출현하였다. 이러한 ‘學無定論’의 상황은 거듭되는 명조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조류에 밀려 악화될 뿐이었다. 한편, 거업의 혼란은 당시의 출판 붐과 맞물려 擧業書의 대유행을 가져왔으며, 거업서의 유행은 명말의 사회에 ‘空疏不學’의 풍조를 만연시켰다. 顧炎武는 이러한 공소불학의 풍조로 인해 학문이 황폐화되고 인재가 타락하여, 결국 명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동일한 논의는 黃宗羲에게서도 나타난다. 이들의 주장은 『明史』 儒林傳에 반영되어 “科擧가 성하여 儒術이 미미해졌다”라는 명대 유학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명대의 학문은 과거 때문에 쇠퇴하였다는 주장은 청초에 가장 권위 있는 견해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명대의 학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는 청초의 새로운 학문적 사조에서도 과거에 대한 반성이 중요한 요소였음을 시사한다.
Abstract
明代の官吏登用制度は、事実上科挙に一本化されていた. これは結局、草野に豪傑の士が埋もれているのに、朝廷には有能な官吏が足りない、という事態をもたらした. こういう問題が表れ始めたのは、隆慶․万暦頃からであった. 本稿では、受験生の答案文である「挙業」を通して、明代の科挙について検討することにした. 明代の挙業は、正徳․嘉靖に全盛期を迎えた後、隆慶․万暦頃から衰えはじめ、天啓․崇禎には堕落の極に至ったといわれる. このような挙業の変化は、当時の学問の動向とも密接に関わっていた. 正徳․嘉靖から始まる陽明学の流行は、ついに挙業にも影響を及ぼし、隆慶․万暦初年頃から朱子学の権威を揺るがした. その結果、陽明学の外にも、諸子百家․仏教․道教等々、それまで異端視された思想が挙業に持ち込まれる事態があらわれた. こういう「学無定論」の状況は、度重なる明朝の措置にもかかわらず、時代の潮流に推され悪化するばかりであった. 一方、これは、ちょうどこの時期から始まる空前の出版ブームとあいまって、挙業書の大流行をもたらした. それに、業書の流行は明末の社会に「空疎不学」の風潮を蔓延させた. 顧炎武は、こういう空疎不学の風潮のために、学問が荒廃し士習が堕落して、それで明は結局滅亡に至ったと主張した. 同じ主張は、黄宗羲にもみえる. そして、彼らの主張は、『明史』儒林伝に反映され、「科挙が盛んになって儒術は衰えた」という、明代儒學に対する評価にもつながった. 明代の学問は科挙のために衰えたという主張は、清初、もっとも権威ある見解の一つであった. これは、明代の学問に対する批判․反省から出発する清初の新しい学問的思潮においても科挙に対する反省が重要な要素であったことを示唆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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