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의 관점으로 바라본 단종임금의 효문화정책
The Cultural Policy of Filial Piety(HYO) by the King Dan-Jong, viewed from a Practical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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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법은 강제성을 전제로 하고, 윤리는 자율성이 기반이다. 강제성과 자율성의 서로 다른 차원의 접근이므로 양자는 배치된다. 하지만 두 법에는 처벌 규정이 없다. 인성과 효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면서 이를 실천하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처벌에 대한 내용은 없다. 다만 교육기관과 지자체에서 실천해야한다는 의무 규정은 있되 처벌 규정은 없다. 강제성 없는 자율적, 자발적 판단에 따른 능동적 법률인 셈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가 지배하였고, 돈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매김하였다. 양명학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사욕(私欲)이 본성을 가렸고, 그것이 ‘양지’ 실천을 방해하였다. 그렇다면 이 두 법률은 가려진 본성으로서의 ‘양지’를 어떻게 해서든 현실로 드러나도록, 그래서 ‘지행(知行)’이 합일하도록 교육으로서 유도해 보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조선시대 단종의 효행정책을 살펴보려고 한다. 단종은 단명했지만 효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린 나이에 등극하여 온갖 수모와 시련을 겪으면서도 본성속의 ‘효(양지)’ 실천에는 누구보다 앞장선 사람이다. 최고 지도층의 질서 훼손과 반인륜적 행위, 곧 숙부 세조의 횡포로 죽음까지 부른 패륜적 상황에서도 단종은 다른 왕들과 비교, 남다른 효행정책을 펼치었다. 단종의 효에 대한 남다른 생각과 정책이 얼마나 절실하였는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왕조실록에 명시된 효관련 기록을 통계자료로 찾다 보면 그 관심도를 알 수 있다. 짧은 재위 기간, 누구보다 많은 효행자 포상정책을 펼친 당시 통계를 주목하는 이유다. 이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효심이 효행정책을 강화했고, 이를 ‘지행합일’의 관점에서 살펴보려는 것이 이 논문의 내용과 방법이다.
Abstract
Filial piety and patriotism was an ideological backbone of the Chosun Dynasty. Love and respect in a family, which are the key aspects of filial piety, is directly linked to patriotism in a national level. This patriotism became the key component to maintain order in the nation. In some cases, one even sacrificed his/her own life to conduct filial piety and/or to have patriotism for his/her parents and/or the country, respectively. King Dan-Jong has been known to be one of the most unfortunate kings in Chosun Dynasty. His uncle forced him to abdicate, and took his place as King Se-Jo, and exiled Dang-Jong to Yeongwol, Gangwon. King Dan-Jong was later murdered and buried in Yeongwol. Many Korean people these days acknowledge Yeongwol with King Dan-Jong’s sad story. Dan-Jong lost his father, King Mun-Jong, when he was only 12 years old and became the sixth king of the Chosun Dynasty. Therefore, he spent very little time with his father and missed him a lot. His filial piety policy reflected his feelings about his father. During his rule of the country, he rewarded many people who conducted filial piety, although he only ruled the country for 3 years. Yeongwol also contains a nationally known place, called Gossi Cave. During Japanese rule, Go brothers and their families fought against the Japanese army and took refuge in this cave. These two unrelated stories have caused Yeongwol to be known asa county of filial piety and patriotism. This county even holds festivals on filial piety and patriotism. The present study discussed the historical and ideological characteristics of Yeongwol that caused this county to become a famous place for filial piety and patrio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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