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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양명학에서 오시오 츄사이(大塩中斎)의 위상[Ⅱ]

Oshio Chusai’s Status in Modern Japanese Youmeigaku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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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철학

초록

이 논문에서는 오사카에서 활동했던 오시오 츄사이(大塩中斎. 1793-1837)를, 근대 일본 양명학의 위상이라는 측면에서 조명해보았다. 세부적으로 논의한 내용은, 먼저 ‘오시오 츄사이와 양명학’, 다음으로, ‘덴포(天保) 대기근’과 ’오시오의 난/사건’을, 마지막으로 ‘근대일본양명학에서 오시오 츄사이의 위치’에 대한 것이었다. 일본 양명학은 나카에 토쥬를 시초로 해서 그 문하에 쿠마자와 반잔과 후치 코잔이 나온다. 이후 일본 양명학을 미와 싯사이가 중흥시키고, 그 뒤 근세기 끝자락에 사토 잇사이와 오시오 츄사이가 자리한다. 츄사이의 양명학은 그에 앞선 여러 사람들과 다르며, 후세의 평가도 다양하다. 아울러 츄사이의 이른바 ‘오시오의 난/사건’ 또한 양명학적 실천’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하면 덴포의 대기근 속에서 고통 받던 가난한 민중들을 자신의 ‘태허(太虛)ㆍ양지(良知)’의 지침에 따라 구제하고자 하였다. 그럼 오시오 츄사이를 두고 현재까지 일본에서는 어떤 평가가 이루어져 왔을까?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 근대에 논의되었던 두 평가가 현재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 하나는 ‘국가주의적, 우익적’인 평가이며,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항하는 ‘좌익적, 반국가적, 사회주의적’ 평가이다. 종래 일본의 학계에서는, 전자를 ‘하얀 양명학(白い陽明学)’으로, 후자를 ‘붉은 양명학(赤い陽明学)’으로 규정해왔다. 물론 이 둘은 상이한 것이 아니다. 뿌리가 같으면서 해석과 실천이 달라진 것이다. 오시오 츄사이의 양명학, 그리고 그의 난/사건의 평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울러 근대 일본 양명학, 나아가서는 일본 양명학이 다시 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논문은 연구성과의 분량이 방대함에 따라, 동일한 제목이나 [1]과 [2]로 분철하여 작성함을 밝혀둔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Oshio Chusai(大塩中斎. 1793〜1837)’s status from the standpoint of modern Japanese Yomeigaku(陽明學). The order of description in this paper is as follows; First, Oshio Chusai and his Yomeigaku; then, the Tempo great famine and ‘the Oshio‘s revolt․Incident’; and lastly, the location of Oshio Chusai in modern Japanese Yomeigaku. Japanese Yomeigaku is from Nakae Toju in Edo era. He produced excellent pupils such as Kumazawa Banzan and Fuchi Kozan. Since then, Japanese Yomeigaku is revived by Miwasitsai. At the end of the modern era, Sato Issai and Oshio Chusai are located. Chusai’s Yomeigaku is different from many others. And the evaluation of posterity is diverse, and later evaluations also vary. The 24-year-old Chusai began studying Yomeigaku when he read lǚkūn(呂坤)’s shēnyínyǔ(呻吟語) Since then, he has been associated with Yomeigaku in Japan and China. In particular, he appears to have been the most active Yomeigaku research at age 41. Chusai’s so-called ‘the Oshio‘s revoltㆍIncident’ is also understood as a good example of practice in Yomeigaku guideline. In other words, he tried to save the poor people who had suffered from ‘the great famine of Tempo’ according to realizing the philosophy of Taikyo-Rouchi. So how did Oshio Chusai’s evaluation come from Japan? In short, the two evaluations that were discussed in modern Japanese still persist. One is nationalistic and right wing evaluation. The other is leftist, anti-state, and socialist evaluations against it. Conventionally, Japanese academia has defined the former as ‘white yomeigaku(shiroi yomeigakuㆍ白い陽明学)’ and the latter as ‘red yomeigaku(akai yomeigakuㆍ赤い陽明学)’. Of course, the two are not different. The same roots have led to different interpretations and practices. Oshio Chusai’s Yomeigaku and his so-called ‘the Oshio‘s revoltㆍIncident’‘s evaluation is still in progress. In addition, modern Japanese Yomeigaku needs to be reevaluated. This paper is divided into [1] and [2] due to the vastness of the research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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