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마지의 기악무(伎樂舞)에 대한 일고(一考)
A study on Giakmu of Mima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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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백제 음악문화의 연구는 문헌 자료와 유물 등 이유로 고구려와 신라보다 부진한 양상을 나타낸다. 하지만 일찍부터 중국과 일본으로 백제의 음악문화를 전파한 사실과 백제금동대향로를 통해 백제의 음악문화는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특히 미마지와 그의 기악무는 한, 중, 일의 학자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이와 관련된 연구 역시 적지 않게 발견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마지 기악무의 실체는 아직도 완전히 밝혀내지 못한 채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미마지가 일본으로 전한 기악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미마지와 오국의 다양한 학설을 다시 검토하여, 기악무가 일본으로 전해진 612년을 기준으로 백제와 중국의 교류를 양, 진, 수를 통해 다시 살펴보았다. 이러한 기초 작업을 통해 문강악, 상운악의 “문강사와 호무”와 기악무를 비교, 설명하면서 미마지 기악무의 실체를 규명하려고 노력하였다.
Abstract
Studies on the musical culture of Baekje tend to fall behind those on Goguryeo and Silla by reason of the lack of literature data and remains, etc. However, it has been verified that Baekje spread its musical culture to China and Japan from the earlier days and that Baekje's musical culture was in a considerably advanced level as indicated by Baekje Incense Burner. In particular, Mimaji and his Giakmu attracted much attention of scholars in Korea, China, and Japan, and quite a number of studies have been found on the subjects. Disappointingly though, the substance of Mimaji's Giakmu has not been completely clarified. In this study, various theories about Mimaji and Wu Kingdom were reexamined to verify the true nature of Giakmu handed over to Japan by Mimaji, and thus the exchange between Baekje and China was discussed based on the year 612, the year in which Giakmu was transferred to Japan, in terms of Liang, Chen, and Sui. Through this groundwork, it was attempted to verify the substance of Mimaji's Giakmu by comparing it against "Wenkangci and Huwu" of Wenkangyue and Shangyuny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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