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춤추는 시대에서 춤추지 않는 시대로
The Chosŏn Dynasty:From Age of Dancing to Age of Not Danc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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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의 목적은 조선시대에 왕이 춤추고, 춤을 권하는 문화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연구방법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왕의 춤과 관련된 기사를 추출하여 분석하였으며, 연구내용은 크게 두 가지 시기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첫째는 왕이 춤추고 춤을 권하는 시대로, 태조부터 연산군까지의 시기이다. 태조는 왕일 때 자신은 춤추지 않았지만 훈신들에게 춤을 권했고,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는 술자리에서 즐겨 춤을 추었다. 정종은 태상왕 태조와 어울려 춤추거나, 세자 또는 신하들과 어울려 춤추었다. 태종은 춤추기와 춤 권하기를 가장 좋아한 왕이었다. 왕권을 찬탈한 태종은 정치세력을 넓히기 위해 연 잔치에서 자주 춤을 권하였으며, 성균관 유생들에게까지 춤을 권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과 즐겨 춤추었고, 형의 병을 위로하기 위해 춤을 추기도 했다. 세종은 신하들과 춤추는 자리에서, 신하에게 안기기를 허락할 정도로 권위적이지 않았다. 세조는 세자나 종친이나 재신들에게 춤추도록 명하기를 좋아한 임금이었다. 그러나 성종대에 사림파가 등장하고 대간의 역할이 커지면서 왕이 추는 춤이나 신하의 춤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이 나타난다. 연산군은 폭정과 더불어 파행적인 춤을 추었다. 집권 후기에는 처용가면을 쓰고 대비를 희롱하며 일탈에 가까운 춤을 추었다. 둘째는 왕이 춤추지 않는 시대로 중종 이후의 시기이다. 중종 이후부터 왕은 더 이상 춤추지 않는다. 왕이 춤을 권유하는 분위기도 성리학자인 신하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양로연이나 기로연의 성격을 가진 잔치를 열어줄 때, 왕은 노인들에게 춤추기를 권하기도 하나, 그 조차도 거의 없다. 영조는 조선후기에 드물게 춤을 권했지만, 영조의 권유로 신하가 춤을 추었다고 할지라도 비판받았다. 정조 이후에는 신하들에게 춤추기를 명하는 기사조차 보이지 않으며, 인물을 평가할 때도 춤춘 경력이 부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조선후기의 변화된 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조선 초기부터 왕은 술자리에서 자유로이 춤을 추었고, 춤을 권유했다. 이처럼 자유롭게 춤추는 분위기는 비교적 자유로이 감정을 발산할 수 있었던 조선 전기의 시대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고려의 잔영이 사라지고, 형식과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리학이 공고화되는 중종 이후에 들어와서는 자유로이 춤추는 몸이 비난받는 경직된 시대가 되었다.
Abstract
The aim of this study is to figure out how the culture has been changed that the King was dancing and persuading to dance in Chosŏn. This study is based upon the Chosŏn wanjo sillok 『朝鮮王朝實錄』 (Annals of the Chosŏn Dynasty). From this study it is summarized as two periods as follows. At first, the king had a drink and danced by himself or persuaded his retainers to dance, from King T'aejo 太祖 (1335~1408) to King Yŏnsangun 燕山君 (1476~1506). The King T'aejo had persuaded the meritorious subjects to dance during his reign and he had danced by himself once abdicated the throne. The King Chŏngjong 定宗 (1357~1419) had danced with the abdicated King T'aejo, or had danced with the crown prince or retainers. The King T'aejong 太宗 (1367~1422) had really loved to dance and to persuade dancing. The King T'aejong who had usurped the throne had persuaded dancing frequently in a banquet for extending his political influence, and had persuaded it even to Sŏnggyun'gwan yusaeng 成均館 儒生 (students of Confucian Academy). The King Sejong 世宗 (1397~1450) had used to dance with his farther T'aejong, and also had danced to inquire after his brother. He was not masterful even allowing to throw himself in retainer’s arms. The King Sejo 世祖 (1417~1468) had liked to order the crown prince or the ministers to dance. Appearing of sarimp'a 士林派 (a political sect) and increasing of taegan’s 臺諫 (an organ of expression) role in the age of the King Sŏngjong 成宗 (1457~1494), the adverse opinion about the dancing King or retainers had been appeared. The King Yŏnsangun had danced eccentrically along with tyranny. Secondly, it was the period of that the King had not danced, from King Chungjong’s 中宗 (1488~1544) reign. The scholars of Sung Confucianism had argued against for persuading dancing by King. The King Yŏngjo 英祖 (1694~1776) had persuaded dancing rarely at the later period of Chosŏn, but the retainer who had danced had been opened to censure even he danced per the persuasion from King. This represents the phases of the times which had been changed on the later period of Chosŏn. After the age of King Chungjong when the Neo-Confucianism became strong, it became an rigid age which the free dancing had taken cri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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