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의 고려에서의 위상과 나옹의 지공 계승 - 지공의 사리와 보스톤미술관 사리구 문제까지 -
The status of Jigong(指空) in Goryeo and his succession by Naong(懶翁) - centering on Jigong's Sarira and the Sarira case in Boston Fine Art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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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미국 보스턴미술관에는 1939년 일본의 야마나카 상회에서 구입한 높이 22.2㎝로 된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가 전시되어 있다. 이 사리구에는 작은 8각형 사리구 5개가 봉안되어 있다. 이를 소위 ‘3여래如來 2조사祖師’라고 하는데, 이 중 사리는 유물이 아니므로 조계종의 요청으로 2024년 4월 16일에 한국에 반환되었다. 이를 계기로 지공과 나옹의 한국 불교사적인 위상에 대두 이유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본 고는 인도 승려인 지공이 고려불교에 강인한 인상을 남길 수 있던 이유로 배경적인 2가지와 불교적인 2가지에 주목했다. 배경으로서의 2가지는 첫째, 원 간섭기에는 고려인의 위치가 중국 한족보다 높아서 중화주의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지공이 원의 제6대 황제인 진종晉宗의 어향사御香使 신분으로 고려에 왔다는 점이다. 불교적인 2가지는 지공의 주장에 따르면, 지공의 가계는 부계로는 붓다의 혈족血族이며, 모계로는 달마의 혈족이라는 점이다. 또 지공은 무생계無生戒라는 대승불교의 계율戒律을 주된 교화 수단으로 삼았는데, 이는 신분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다수를 한꺼번에 교화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로 인해 지공은 고려불교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게 된다. 이 지공의 수제자로서 신돈의 몰락과 함께 부각 되는 게 나옹이다. 이런 점에서 공민왕의 나옹에 대한 왕사 책봉에는 지공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지공과 나옹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유물이 바로 보스톤미술관의 사리구이다.
Abstract
The Boston Fine Art Museum in the United States exhibits a 22.2 cm tall ‘silver-plated Rama tower-shaped sarira case’ purchased from Yamanaka Trading Company of Japan in 1939. This sarira case enshrines 5 small octagonal reliquaries, which are called the ‘3 Tathagatas(如來) and 2 Patriarchs(祖師).’ Since the sarira is not an artifact, it was returned to Korea on April 16, 2024 at the request of the Jogyejong Order. This has increased the interests in the status of Jigong and Naong in Korean Buddhist history. This study focuses on 2 backgrounds and 2 Buddhist reasons why Jigong, an Indian monk, was able to leave a strong impression on Goryeo Buddhism. The 2 background factors are: first, during the Yuan intervention, the status of Goryeo people was higher than that of the Chinese Han people, so Sinocentrism did not work; Second, Jigong came to Goryeo as the incense priest of the 6th emperor Jinzong(晉宗) of the Yuan Dynasty. The 2 Buddhist factors are: according to Jigong’s claims, his lineage was the blood relative of Buddha on his father’s side and the blood relative of Dharma on his mother’s side. In addition, Jigong used the Mahayana Buddhist śīla-vinaya of non-birth precept(無生戒) as his main teaching method, which was a method that he could teach many people at once regardless of their status or positions. As a result, Jigong came to have a huge influence on Goryeo Buddhism. As a Jigong's disciple, Naong emerged along with the downfall of Shin Don. In this respect, Jigong's influence must have been strong in King Gongmin's appointment of Naong as the royal preceptor. The relic that shows this relationship between Jigong and Naong is the sarira reliquary in the Boston Fine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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