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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지역 문인 연구 우정(憂亭) 김경직(金敬直)의 춘천(春川) 도포서원(道浦書院) 배향과 그 추숭 양상

The Enshrinement of Wujeong(憂亭) Kim Kyeong-jik(金敬直)’s Chuncheon(春川) Doposeowon(道浦書院) and the Aspects of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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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고는 춘천(春川) 도포서원(道浦書院) 배향 인물 가운데 하나인 김경직(金敬直)의 생애와활동, 그리고 그 추숭 양상에 대해 살핀 글이다. 김경직은 춘천 출신의 문과 급제자로서 지역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신숭겸(申崇謙)·신흠(申欽)과 함께 도포서원에 배향되기까지 한 인물이었음에도, 서원 건물의훼철과 자료의 부재로 인해 그간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해왔다. 그는 1590년 진사시에 합격, 1610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光海君)의 난정에 실망하여 춘천 우두촌(牛頭村)으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이후 인조반정(仁祖反正) 뒤에 비로소 다시 출사하여 여러 내외직을 역임한 뒤 은퇴하여 춘천에서 노년을 보냈다. 그는 이정형(李廷馨)·신흠(申欽)·김상헌(金尙憲) 등 당대의 명사들과 두루 교유하고 최명길(崔鳴吉) 같은 중신에게 직능을인정받았으며, 지역의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춘천을 대표할 만한 인사로 주목받았다. 김경직이 춘천 도포서원에 배향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요인은 크게 세 지점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수 있다. 먼저, 중앙 관직을 지낸 뒤 고향으로 은퇴하여 후학을 길러낸 ‘향선생(鄕先生)’으로서 공고한 지위를 획득하였던 점을 꼽을 수 있다. 다음으로, 당대의 대문인으로서 춘천에 유배되어 있던 신흠과 깊이 교유하였고 그 외가 또한 평산 신씨(平山申氏)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해군 때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여 절조를지킨 점을 거론할 수 있다. 특히 이 세 번째 지점은, 도포서원 배향의 동인으로 작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미지를 ‘절사(節士)’로서 문인 사회에 각인시키는 데에도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실제 형상화 작업은 송시열(宋時烈) 이하 노론계(老論系) 인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들은 김경직이 지닌 절의의 면모에 관심을 보이고 그러한 요소를 추출·확대하여 각종 전기류 기록에서 이를 반복적으로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 김경직은 단순히 ‘지역 사회의 향선생’으로 기억되는 것을 넘어 격랑의 시기 속에서도 자신의 지조를 꿋꿋이 지킨 ‘광해조의 일민(逸民)’으로서 전국적인 명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은 김경직의 생애와 활동, 후대적 추숭 양상은 춘천 도포서원 배향인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케 할 뿐 아니라, 조선 시대 지역 사회의 문인이 지속적인 기억작업을 통해 전국적인 위상을 부여받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살필 수 있도록 한다.

Abstract

This thesis examines the life and activities of Kim Kyeong-jik(金敬直), one of the main characters of Chuncheon(春川) Doposeowon(道浦書院), and the aspects of worship for him. Kim Kyung-jik, a bureaucrat from Chuncheon, was not only widely known in the local community, but even as a person who was enshrined to the Doposeowon. But he has not received suffi cient attention due to the destruction of the seowon building and the absence ofdata. He passed the Jinsa(進士) exam in 1590 and Moongwa(文科) in 1610. But he returned to the company because of tyranny of Gwanghaegun(光海君), and re-entered the government and served in various positions after Injobanjeong(仁祖反正). He received attention as a representative of Chuncheon in that he had acquaintance with prominent fi gures of the time, and devoted his eff orts to nurturing local juniors. The direct factors that led Kim Kyeong-jik to be enshrined to Doposeowon can be divided into three main points. First of all, it can be pointed out that he obtained a solid position as a ‘teacher of the local community’ who retired to his hometown after serving the government and teaching his juniors. Next, he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Shin Heum(申欽), who was exiled to Chuncheon, and he was a member of the Pyeongsan Shin(平山申氏) family. And finally, it can be mentioned that he kept his loyalty by abandoning his post and hiding during the Gwanghae period. In particular, this third point not only acted as a main factor for the enshrinement of the Doposeowon, but also played a major role in imprinting his image as a ‘loyalist’ in the literary society. Th e actual fi guration work was led by the Song Si-yeol(宋時烈) and the Nohron(老論) figures. They extracted and expanded Kim Kyung-jik’s aspect of loyalty, and repeatedly emphasized it in their various works. As a result of these eff orts, Kim Kyung-jik was not only remembered as a ‘teacher of the local community’, but also gained national fame as a ‘hermit of the Gwanghae period’ who stood fi rm despite his turbulent times. The life, activities and aspects of worship of Kim Kyung-jik as described above, enable a more in-depth understanding of Doposeowon’s characters, and makes it possible to examine the process by which local writers were given national status through continuous memory work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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