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공화국 전후 회을 김성숙의 혁신정당 활동과 남제주 지역정치의 양상
Kim, Seong-sook’s Reformist Party Activities and the Regional Politics of Southern Jeju during the Second Re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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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7⋅29총선에서 혁신정당인 한국사회당의 회을(悔乙) 김성숙(金成淑, 이명 金成璹)은 남제주군의 지역적 특성을 배경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남제주군은 민주당 공천 갈등이 심했던 지역으로 민주당의 내분이 김성숙에게 유리하게작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제주 지역사회는 지연⋅혈연⋅학연이 선거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김성숙은 고향인 제주 가파도에 신유의숙(辛酉義塾)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운동가로 이름을 알렸는데, 가파도가 속한 대정읍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했고, 대정읍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득표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김성숙은 지역민들에게 4⋅3사건의 진상규명을 약속했기 때문에 희생자 가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남제주 지역정치와 지역사회의 특수한상황이 김성숙의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 김성숙이 주도한 한국사회당의 이념은 혁신세력 중에서 과하지 않고 온건했으며, 과거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을 계승한 것으로서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무난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김성숙은 극좌가 아닌 중도파 민족주의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을 이 시기에도 이어나가고 있었다. 특히 4⋅3사건이라는 깊은상처를 안고 있는 제주에서 과하지 않은 혁신을 주장하여 유권자들의 외면을 피할 수 있었다. 김성숙은 약속했던 4⋅3사건의 진상규명에 힘썼고, ‘대동병 환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혁신세력의 통합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통합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신유의숙을 통한 교육운동의 경력과 명성, 그리고 이와 함께 김성숙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었던 것이 유의미하게 작용했다. 해방 이후 김성숙은 좌우통합을 위해 노력했고, 극좌와 극우 양극단을 지양했다. 이러한 노력은 제2공화국 시기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Abstract
In the July 29 general elections in 1960, Kim, Seong-sook of the Korean Socialist Party, an reformist party, was able to be elected against the background of the political and social characteristics of the Southern Jeju region. Namjeju-gun was an area where the conflict over the Democratic Party’s nomination was severe, and the internal conflict of the Democratic Party could work in Kim, Seong-sook’s favor. In the Southern Jeju community, regional, blood and academic ties were influencing the election results rather than policies and pledges. Kim, Seong-sook won an overwhelming number of votes in his hometown of Daejeong, and the further away he was from Daejeong, the lower the vote rate. In addition, Kim, Seong-sook was able to get the support of the victims’ families because he promised the local people to find out the truth about the April 3rd Incident. This special situation in Southern Jeju local politics and local communities influenced Kim, Seong-sook’s election. The ideology of the Korean Socialist Party, to which Kim, Seong-sook belongs, was moderate, not excessive, among the reformist, and inherited the arguments of the centrist nationalists in the past, and was a content that most voters could sympathize with without difficulty. In particular, it is thought that Jeju, which has the deep wounds of the April 3rd Incident, was able to avoid turning voters away by insisting on innovation that was not excessive. Kim, Seong-sook continued his activities as a centrist nationalist politician, not as a far left. Kim, Seong-sook worked hard to find out the truth about the Jeju April 3rd Incident, which he promised, and continued to attempt to integrate innovative forces to the extent that he was nicknamed a patient with unity disease. The fact that he was able to play a leading role in the process was significant because of his wide political spectrum along with his past career. During the liberation period, Kim, Seong-sook tried to unify the left and right, and avoided extreme left and extreme right. These efforts continued during the Second Republic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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