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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의 경험과 냉전의 경계 월경 - 순천 출신 재독 정치학자 조명훈(趙明勳)의 생애사

The Experience of the Hot War and Crossing Borders of the Cold War - The Life History of Cho Myung-hoon, a German political scientist from Sun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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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 논문은 조명훈(趙明勳, 1931∼2006)의 생애사에 관한 연구이다. 조명훈의삶과 이력은 여순사건이라는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어떻게 모순과 상처를 스스로치유하며 살아갔는지 하나의 ‘극복’ 사례로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그는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당시 구속과 재판을 겪으며 열전을 몸소 경험했지만, 이후 동아시아 냉전 연구를 비롯하여 한반도 문제에 관한 사회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 그의 생애사는 한 개인이 국가폭력 앞에 단지 ‘피해자’나 ‘객체’로서 존재했던 것만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사건 이면의 근본적 문제를 구명하고 모순을 해결해 나간모습을 보여준다. 조명훈의 삶은 개인이라는 행위 주체가 냉전과 국가폭력의 구조적 제약 속에서도 ‘피해’나 ‘저항’의 이분법만이 아니라,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고유한 삶을 살아갔다는 점에서 풍부한 ‘행위자성(agency)’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국가 혹은집단의 기억에 편입되지 않은 ‘피해자’들 개개인의 삶은 그것대로 온전히 복원될필요가 있다.

Abstract

This paper is a study of the life story of Cho Myung-hoon(趙明勳, 1931-2006). Cho’s life and story provide insights into how a victim of state violence, the Yeosun Incident, lived with contradictions and wounds and healed himself as an example of “overcoming”. Although he experienced the heat of war through his imprisonment and trial during the Yeosun Incident and the Korean War, he has since continued to engage in social activities on the Korean peninsula, including research on the Cold War in East Asia. His life story shows how an individual did not simply exist as a victim or an object in the face of state violence, but became a ‘subject’ and rescued the underlying issues behind the incident and resolved the contradictions. Cho’s life reveals a rich sense of ‘agency’ in that the individual actor, even within the structural constraints of the Cold War and state violence, carved out his own territory and lived a unique life, not just a dichotomy of ‘victimisation’ or ‘resistance’. In other words, we may be able to draw an open end to the consequentialist narrative of history that portrays Cho as an innocent victim by looking at the way he lived his life, making judgments as he went along, despite the trauma of the Yeosoon incident in his childhood. In this sense, the lives of individual ‘victims’ who are not included in the national or collective memory must be fully rest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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