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악(伎樂)의 변모 양상 -악기 편성과 곡목을 중심으로-
Transformation Aspects of Giak(伎樂): Orchestration and Reper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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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일본의 정사(正史), 사찰의 자재장, 사찰 관련 문헌, 악서, 고악보 등의 사료를 통하여, 먼저 기악(伎樂, 妓樂)의 명칭과 연희 목적에 대해서 개괄하고, 이들 사료에 기록된 악기 편성 및 곡목 등을 비교하여, 기악의 변모된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기악은 본래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였다. 그러나 7세기 초에 백제인에 의해서 일본에 기악이 전해짐에 따라, 이후 기악은 특정의 가면 연희극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8세기까지 기악은 오악(吳樂)이라고도 불렸다. 기악은 쇼토쿠태자의 불교 진흥 정책과 외래음악 장려책에 의해, 천황이 참석하는 대법회에서 행해져, 사원악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기악은 조정의 음악을 관장하는 가가쿠료[雅樂寮]에 소속되어, 일본 궁중음악 및 외래음악과 함께 중요한 행사에서 연행되는 등, 8세기 중반에 최성기를 맞이하지만 점차 쇠퇴하여 에도시대 이후로 전승이 완전히 단절되었다. 9세기까지 기악의 연주에는 적(笛, 한반도계의 횡적으로 추정)ㆍ요고(腰鼓)ㆍ정반(鉦盤)이 사용되었다. 8세기에 요고의 연주인원은 60명에 달했지만 9세기가 되면 그 연주자는 1/7로 현격하게 줄어든다. 또한 9세기 이후 기악의 악기는 가가쿠의 악기인 용적(龍笛), 삼고(三鼓), 동발자(銅鈸子)로 변하게 되는데, 이러한 악기 편성의 변화는 기악이 가가쿠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된 것을 의미한다. 14세기에 이르면 기악에서 동발자는 사용되지 않게 되며, 17세기 말에는 타악기도 쓰이지 않고 적으로만 연주하는 형태가 되어, 초기의 융성했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모되었다. 10세기 초까지 기악의 연주곡목은 최대 14곡까지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9곡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세기 중반에 편찬된 칙찬악보 [신찬악보(新撰樂譜)]에는 기악이 「기악」이라는 항목과 당악의 「일월조」라는 항목에 중복되어 기재되어 있는데, 이 둘은 같은 것으로, 당시 기악을 당악에 흡수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악보를 시작으로 14세기까지의 악보와 악서에는 기악의 악곡 뒤에 <무덕악>이 기재되어 있어, 지금까지 이 곡이 기악의 악곡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악보의 기재 방식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무덕악>은 당악의 악곡으로서, 기악의 관련 악보에는 목차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 실제 악보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점 등에 의해서 기악과는 상관이 없는 곡임을 알 수 있었다. [신찬악보]가 편찬되었던 당시는 일본에서 악제개혁이 일어난 시기로, 기악도 이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악제개혁에 의해 첫째,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외래음악은 중국계음악인 좌방악과 한국계음악인 우방악으로 나뉘게 되는데, 기악은 여기에서 제외되어 점차 궁중과는 멀어져 쇠퇴하는 결과를 맞는다. 둘째, 외래 악기의 정리에 따라 기악에서 사용하던 요고와 한반도계 횡적은 각각 삼고와 용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셋째, 중국음계가 일본식 음계로 정리되었는데, 이에 따라 한국적 음악의 특색을 가진 기악은 일본적인 취향의 음악으로 변질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넷째, 궁중음악을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형태가 만들어짐에 따라, 기악도 무용을 수반하지 않은 관현으로 연주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12세기 이후로 기악의 악곡은 가가쿠의 악곡으로 대용하는 등, 기악은 원래의 모습을 잃고 점차 가가쿠에 잠식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기악의 실체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어 왔다. 일본에는 사찰과 박물관에 기악의 탈이 보관되어 있어 이를 근거로 탈의 복원이 이루어졌고, 연희에 대해서는 주로 악서 [교훈초(敎訓抄)]의 기록을 참고로 하여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악은 10세기 이후 악기, 악조, 연주 방식, 악곡 등의 여러 측면에서 변화가 일어나 원래의 기악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기악의 복원작업은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보다 신중한 조사와 면밀한 고증을 통하여 수행되어야 한다고 하겠다.
Abstract
In this paper, I first outlined the names of Giak(Gigaku) and the purpose of its performance, examining the aspects of its transformation and its significance by comparing the orchestration and repertories recorded in historical data including Japan’s historical documentations, general inventories of temples, temple-related literature, musical books, and ancient notations. Giak used to be a common noun for music that was used in Buddhists’ rituals. It was used for masked plays since it had been passed to Japan by a Baekje person in the early 7C. It was also called Kure-gaku until 8C. As a part of an incentive scheme by prince Shotoku(聖德太子) to promote Buddhism and foreign music, Giak was featured of temple music that was performed in large Buddhist ceremonies with the emperor attending. Giak belonged to Gagakuryo(雅樂寮) which took charge of court music and was used along with Japanese court music and foreign music in important events, reaching the peak period in the mid 8C. However, it started to decline and came to a complete severance since the Edo period. Giak was orchestrated with Hue(presumed to be a horizontal flute from Korea), Yoko(an hourglass drum shaped instrument), and Shoban(a metal percussion). The players of Yoko reached about 60 in 8C, but the number dramatically dropped to one seventh in 9C. The instruments in Giak were changed to include Hue(Ryuteki), San-no-tsuzumi(hourglass drum), Dobatsi(small cymbals shaped instrument) since 9C, which means that Giak was put under the influence of Gagaku. Dobatsi was no longer used in Giak in 14C, and percussion instruments were excluded, with solo use of Hue only in the end of 17C, making it totally different from the early days. There were maximum 14 pieces in the repertories of Giak until the beginning of 10C, but they were reduced to 9 pieces later. In Newly Compiled Notations(Sinsengakuhu:新撰樂譜) compiled in 966, Giak is recorded in repetition in the section of 'Gigaku(Gigok)', and 'Ichikotsujo' of Togaku(唐樂), which are the same, from which we can presume that there was an attempt to absorb Giak in Togaku at that time. In addition, Butokugaku has been considered a Giak piece as it is included in the book next to the Giak pieces, however, I have found out that this is one of the Togaku pieces and thus is irrelevant to Giak. By the time of publishing Newly Compiled Notations(Sinsengakuhu), there was musical reformation in traditional Japanese court music and Giak was also influenced by this reformation: First, the foreign music performed in the court was divided into Togaku, literally Tang Dynasty music, and Komagaku, the Korean music, gradually excluding Giak, which resulted in its decline. Second, Yoko and a horizontal flute from Korea that were used in Giak were replaced with San-no-tsuzumi and Ryuteki. Third, the Chinese scale was organized into the Japanese scale, which has seemingly caused alteration in Giak that had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music, into the one that suits the Japanese taste. Fourth, As the court music began to be performed as orchestral music, there was an attempt to perform Giak as orchestral music without dance accompaniment as well. It can be said that Giak gradually lost its early features being encroached by Gaga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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