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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황실극장의 대중극장으로의 전환 과정에 대한 연구: 희대·협률사를 중심으로

Converting Process from Imperial Theatre to Public One in Korean Empire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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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공연장의 등장은 한국공연예술사의 지형을 달라지게 했었던 것은 물론이고 당시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사회문화적 변화의 원천이었다. 그 이유는 그 설립과 운영 그리고 혁파의 전 과정이 대한제국의 제도-고종황제 어극40주년기념 칭경의식-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칭경의식이 지연․불발되면서 그 결과는 예상치 못한 부문, 즉 대중문화의 성장을 견인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 배경과 원인을 밝혀보았다. 먼저, 국가전례로서 대한제국의 칭경의식의 성격을 검토했고, 다음으로 칭경의식의 하나로 궁내부에 설치된 희대․협률사의 제도적 기반과 흥행의 목적 및 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실공연물이 협률사의 공연물이 되는 절차와 방법에 대해 서술했다. 대한제국의 어극40주년기념 칭경의식이란 전통적인 오례 체제 중 가례의식에 속했지만, 근대적 독립국으로서의 대한제국의 의식이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가례와 빈례가 교차되었고, 한편으로는 서양식 의전까지도 수용한, 신구의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의례였다. 칭경의식은 전통적인 가례의 칭경의의 양식을 취했지만 그 내용은 외교의식이었다. 이러한 의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희대․협률사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칭경의식은 실행되지 못했고, 그 준비 절차 중에 만들어진 희대․협률사만 남아서 흥행을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협률사는 제도적 뒷받침을 받고 황실 공연물을 활용할 수 있었다. 협률사는 “여기-정재/광대-창극/연희패-연희”로 구성된 공연물을 흥행했다. 협률사 흥행물의 양식적 원천은 대한제국의 외교연 가운데 최고 귀빈을 위한 공연물의 구성양식과 같다. 궐 밖에 있었던 협률사는 대한제국이 외교연과 마찬가지로 사연의 절차를 거쳐 황실공연물을 공연할 수 있었다. 황실공연물이 민간에서 흥행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었던 여러 계급의 도시인들이 동일한 취향을 갖는 대중으로 재구성되었다. 협률사를 뒷받침했던 제도는 협률사의 사회적․문화적 영향력을 강화시켰고, 합리적으로 통제되는 극장의 흥행술은 빠른 시간 안에 대중문화를 구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록 대한제국이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대한제국 황제와 정부는 근대 대중문화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할 것이다.

Abstract

The emergence of the first theatre(Hŭidae or Hyŏmnyulsa) made changes in the performing art history of Korea as well as in the social and cultural environment. Because the whole precess of the establishment, operation and abolition of Hŭidae or Hyŏmnyulsa was under the intention of the Korean emperor Kojong who tried to show Korean Empire as an independent modern nation to the other states consciously, the governments of the empire spared no institutional support to it. Hyŏmnyulsa had appeared in the course of preparing Ch'inggyŏngŭishik, the ceremony of the 40th anniversary of the emperor Kojong’s inauguration. As the plan of the ceremony could not come true, it has unexpectedly resulted in the growth of popular culture. in this paper, to fine out the causes and procedures of the result that Korean Empire was not expected i described the characteristics of Ch'inggyŏngŭishik as a national ceremony, then checked the institutional base of Hyŏmnyulsa supported by Kungnaebu which was one of the imperial business organizations, and the entertainment business of it by describing the process of supporting the royal finance by selling tickets, and finally investigated what is the stylistic source of the products performed in the theatre and how were the performances accepted in the society. Because Ch'inggyŏngŭishik of Korean Empire was new ceremony to display Korean Empire as an independent modern nation. it amalgamated traditional ceremonial system crossing Karye and Pinlye which were two of five protocols in older Ohrye system with newly western-styled ceremonye. Then the Russo-Japanese War began, the preparation period of Ch'inggyŏngŭishik was extended. As a result Hyŏmnyulsa continued and was able to accept the imperial performances for the diplomatic ceremony. As Hyŏmnyulsa controled the repertoires and performers inside and outside the theatre with the support of the government and rationalized running system of the theatre, it could strengthen the social and cultural influence on the city. it’s entertainment business changed the audiences who had a variety of cultural backgrounds based on their classes into the h​omogeneous group that had the same taste. As a result it could constitute the public audiences and popular culture in a short time. in this pointy it is said that the emperor and the imperial government contributed to the growth of popular culture they did not intended and exp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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