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동맹휴학의 실태와 성격: 선교회 여학교를 중심으로
Strike of Korean students at missionarygirls’ school in th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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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1920년대 수많은 동맹휴학(이하 맹휴) 가운데 적어도 선교회 학교의 맹휴는 항일민족운동 차원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교육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는 학생권리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 사례연구로 선교회 여학교의 맹휴를 살펴보았다. 교육환경의 개선이란 사회적으로 공식적으로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학교로 총독부의 인가를 받도록 재단, 시설 등 자격을 갖추어 달라는 요구였다. 이와 함께 제반 시설과 자격교사의 확충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여학생들의 요구에 대한 선교회 학교의 대응은 강압적이다 못해 감정적, 폭력적 양상을 띠었다. 한편 학부모와 일반사회에서는 학생과 선교사 간에 중재를 위해 노력했으나 그러한 시도는 학교당국의 무성의와 약속 번복으로 대부분 좌절되었다. 그리고 여론은 선교회 학교와 선교사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Abstract
Strike of Korean students at missionary girls’ school in the 1920’s had been started not by anti-Japanese Movement but by sense of entitlement of girl students. Korean students at missionary girls’ school had asked for elevation of school which is able to authorize academic career in public, expansion of qualified teacher and betterment of school equipment to missionary school authorities. But confrontation aspect of school authorities was oppressive, impulsive, and violent. This was conflict of students’ democratic mind and missionaries’ dictatorship. Meanwhile parents and Korean society had tried to arbitrate between them. Those trial almost had failed because of insincerity and breach of school authorities. So public opinion mostly had criticized missionary girls’ school authorities and mission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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