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임정시기 여성 독립운동의 조직화와 특징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and Korean Female Independence Movement in Shanghai, China
0
조회
0
다운로드
8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직후 1919년 4월 상해에 있던 한인 여성들은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였다. 김순애가 초대 회장을 맡아 회를 조직하고 이끌었다. 대한애국부인회는 주요 사업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금, 적십자회 활동과 간호법 연습, 국내외 애국부인회와의 통신과 연대,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지와 후원, 중국인에게 한국인의 독립운동과 한중관계 연설, 3‧1운동 기념식과 국치기념일에 전단을 배포하여 홍보활동을 하였다. 김순애, 이화숙, 김원경, 오의순, 최혜순 등이 상해 대한애국부인회의 중심인물이었다. 여성들은 1919년 7월 상해 대한적십자회가 재건되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회원 모집 및 회비 모금에 열성을 다하였다. 1920년 초 상해 대한적십자회는 독립전쟁에 대비하여 간호훈련 실시와 의료 인력 양성을 위해 간호부양성소를 부설하였다. 적십자회 조직과 간호훈련은 상해 대한애국부인회 초창기부터 주요 관심사였다. 김연실, 김원경, 이화숙, 김순애, 오남희, 이봉순 등이 대한적십자회 간호부양성소 훈련과정을 수료하였다. 상해 대한애국부인회는 상해 한인교포사회에서 여성을 대표하는 단체였다. 모스크바 극동인민대표회의, 상해 국민대표회의,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에 대한애국부인회 이름으로 대표를 파견하였다. 1920년대 말 상해에서는 대한애국부인회 이외에 한인구락부, 한인부인회, 한인여자청년동맹(한국독립당 산하단체) 등 여성단체들이 조직되었다. 한인교포들은 민족의 생명이 정치(독립운동)뿐 아니라 교육에 있다고 생각하여, 대한인거류민단이 경영하는 인성학교를 설립하였다. 정애경, 김연실은 인성학교 교사로, 김순애는 인성학교 유지원으로 활동하며 교포 2세 교육을 지원하였다. 상해 임정시기 김마리아, 양한나, 최혜순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되거나 활동하기 시작했던 사실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체제에서 여성들의 입법부 진출의 문이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923년 독립운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민대표회의에는 각지의 여성 대표들이 참석하여 각자의 정세 판단에 따라 소신껏 발언하였다. 김순애는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독립운동지도단체를 만들자는 창조론을 주장했으며, 김마리아, 양한나, 오의순을 비롯한 상해 대한애국부인회에서는 임시정부를 확대 개혁하자는 개조론을 주장하였다. 김순애‧김마리아‧차경신은 정신여학교, 이화숙은 이화학당 대학과, 김원경은 경성여고보, 정애경은 숭의여학교, 김연실은 간호학교 출신이었다. 근대교육을 받은 신여성들이 3‧1운동의 경험을 간직한 채 사명감을 가지고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순애, 김원경, 오의순, 최혜순은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성장하거나 독립운동가 남편과 결혼하여 부부가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한편 이화숙, 김마리아, 김연실, 정애경, 이봉순, 차경신 등 독신여성들은 임시정부 침체기에 상해를 떠나 미국에 건너갔고, 김마리아를 제외한 대부분이 한인교포와 결혼하여 미국에 정착하였다. 이들을 포함하여 미주 한인 여성들은 대한여자애국단을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Abstract
Immediately after the establishment of a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 Shanghai in April 1919, Korean women in Shanghai founded the Patriotic Women's Association at Shanghai. Kim Soon-ae(김순애) served as the first President and led the Association. The main activities of the Korean Patriotic Women's Association were fundraising for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e development of Red Cross Society activities and nursing practices, communication and solidarity with other Korean patriotic women's associations in the world, support and sponsorship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nforming Chinese people on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Korean-Chinese relations, and distributing propaganda material on the 3‧1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Day and the National Humiliation Memorial Day. The main figures in the Patriotic Women's Association at Shanghai were Kim Soon-ae, Lee Hwa-sook(이화숙), Kim Won-gyeong(김원경), Oh Eui-soon(오의순) and Choi Hye-Soon(최혜순). They participated in the reconstruction of the Korea Red Cross Society in July 1919 and devoted their enthusiasm to membership recruitment and fundraising. In early 1920, the Korea Red Cross organized a Nursing Department in preparation for the independence war and shortages of medical manpower. The organization of the Red Cross Society and nursing training were the main concerns of the early Patriotic Women's Association at Shanghai. Kim Yeon-sil, Kim Won-Kyung, Lee Hwa-Sook, Kim Soon-ae, Oh Nam-Hee, and Lee Bong-Soon completed their training at the Korean Red Cross Society nursing school. The Patriotic Women's Association at Shanghai was recognized as a representative of women of the Shanghai Korean Community. The Moscow Far East People's Assembly(모스크바 극동인민대표회의), the National People's Congress(국민대표회의), and the Federation of Korean Organizations at Shanghai(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 In the late 1920s, Korean Women’s Club, Korean women's association, and Korean Women's Youth Alliance were founded as women's organizations. Koreans abroad considered that education was every bit as important as politics (the independence movement), and thus established the “School of Humanity”(인성학교) run by the Korean Residents Association(대한인거류민단) at Shanghai. Chung Ae-kyung(정애경) and Kim Yeon-sil(김연실) were teachers at this school, and Kim Soon-ae served as a member of the school, teaching the next generation. Women also supported and funded the activities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The appointment and activities of Maria Kim, Hanna Yang and Choi Hye-Soon as a member of the temporary senate(임시의정원) opened the door to legislature for women. Women also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Representative Conference, which decided on the direction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Kim Soon-ae insisted on dismantl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to create a new independence movement guiding organization, while Maria Kim, Hanna Yang and Oh Eui-soon and the Patriotic Women's Association at Shanghai argued for expanding the Provisional Government. Kim Soon-ae, Maria Kim and Cha Gyung-sin was a graduate of Seoul Chungshin Women’s School(정신여학교), and Lee Hwa-sook was a modern woman(New Woman, 신여성) and a Christian who received modern education as a graduate of Ewha Womans School. It is noteworthy that the educated women defected to Shanghai with a sense of mission, founding or participating in organizations, and engage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Kim Won-kyung was a member of the Korea Communist Party(고려공산당원). Kim Soon-ae, Kim Won-Kyung, Oh Eui-Soon, and Choi Hye-Soon grew up to be independence activists from independence activist's family, married independence activist husbands, and devoted themselves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as independence activist couples. On the other hand, Lee Hwa-suk, Maria Kim, Kim Yeon-sil, Lee Bong-soon, and Cha Gyung-sin went to the United States as single women and most of them married overseas Koreans and settled in the United States. Even following this, they continued their independence movement activities by participating in the Korean Women's Patriotic League(대한여자애국단).
참고문헌 (49)
- "獨立新聞", ~
- "東亞日報", ~
- "수원일보", ~
- "시대일보", ~
- "신한민보", ~
-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 ~
- "동광", ~
- "삼천리", ~
- "조선출판경찰월보", ~
- "한민", ~
-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 ~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별책 2, 92권 조선민족운동연감", ~
- "독립운동사 자료집", ~
- "안창호일기", ~
- "용의조선인명부 해외항일운동자료-선인과 과격파(1915-1926)", ~
-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
-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ⅩⅩ): 중국편(5) 북간도지역 독립군단 명부", ~
- 정정화, "녹두꽃 : 여자독립군 정정화의 낮은 목소리" (1987), 미완
- 김성은, "1920∼30년대 미국유학 여성지식인의 현실인식과 사회활동", 박사, 사학과 한국사전공, pp.2011
- 김성은,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분투한 김순애" (2018), 역사공간
- "독립운동사: 대중투쟁사 10", ~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
- "독립유공자공훈록", ~
- 박용옥, "나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하였다" (2003), 홍성사
- 박용옥, "여성운동(한국독립운동의 역사 31)",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 (2009)
- 3.1여성동지회 문화부, "한국여성독립운동사" (1980), 3. 1여성동지회
- 윤선자, "대한독립을 위해 하늘을 날았던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권기옥" (2016), 역사공간
- 이옥수, "한국근세여성사화 상" (1985), 규문각
-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 ~
- 차경수, "호박꽃 나라사랑: 대한여자애국단 총무 차경신과 그의 가족 이야기" (1988), 기독교문사
- 강영심, "金淳愛(1889~1976)의 생애와 독립운동", 한국근현대사연구, (63), pp.7~41 (2012), 한국근현대사학회
- 김광재, "上海居留朝鮮人會'(1933~1941) 硏究", 한국근현대사연구, (35), pp.142~188 (2005), 한국근현대사학회
- 김광재, "근현대 상해 한인사 연구의 현황과 전망", 해항도시문화교섭학, (17), pp.103~138 (2017), 국제해양문제연구소[DOI]
- 김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여성들의 독립운동 : 1932∼1945", 역사와경계, (68), pp.227~263 (2008), 부산경남사학회
- 김성은, "신여성 하란사의 해외유학과 사회활동", 史叢(사총), (77), pp.109~138 (2012), 역사연구소[DOI]
- 김성은, "최선화의 중국망명생활과 독립운동-『제시의 일기』를 중심으로-", 숭실사학, 31(31), pp.243~285 (2013), 숭실사학회
- 김희곤, "19세기 말~20세기 전반, 한국인의 눈으로 본 상해", 지방사와 지방문화, 9(1), pp.249~285 (2006), 역사문화학회[DOI]
- 김희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上海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 한국근현대사연구, (75), pp.151~173 (2015), 한국근현대사학회
- 오일환, "제3장 조마리아의 생애와 여성리더십", 민족사상, 7(4), pp.65~98 (2013), 한국민족사상학회
- 윤금선, "1920년대 상해 및 남경 지역 민족학교의 교육운동 연구 - <仁成學校>, <東明學院>, <三一中學>을 중심으로-", 국어교육연구, (62), pp.337~388 (2016), 국어교육학회(since1969)[DOI]
- 윤선자, "한국독립운동과 權基玉의 飛翔", 한국근현대사연구, (69), pp.7~36 (2014), 한국근현대사학회
- 윤정란, "식민지 한국 여성 차경신의 민족운동 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1, pp.5~186 (2003),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 이명화, "延薇堂의 생애와 독립운동", 역사와 담론, (73), pp.73~117 (2015), 호서사학회
- 이배용, "제3부 한국근,현대사의 재조명 : 중국 상해 대한애국부인회와 여성독립운동", 이화사학연구, (30), pp.343~364 (2003), 이화사학연구소
- 이상경, "상해판 『독립신문』의 여성관련 서사연구 -“여학생 일기”를 중심으로 본 1910년대 여학생의 교육 경험과 3·1운동 -", 페미니즘연구, 10(2), pp.89~128 (2010), 한국여성연구소
- 이송희, "양한나(1893-1976)의 삶과 활동에 관한 일고찰", 여성연구논집, 13 (2002)
- 이준식,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여성 독립운동",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1), pp.107~141 (200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최낙민, "日帝 强占期 上海 移住 韓國人의 삶과 기억- 1919년~1932년을 중심으로 -", 해항도시문화교섭학, (2), pp.33~69 (2010), 국제해양문제연구소
- 한시준, "정정화의 생애와 독립운동", 사학지, 47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