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호 여대로(鑑湖 呂大老)와 성산 여씨(星山呂氏) 기동파(耆洞派)의 종족(宗族) 활동
Kamho Yŏ Tae-ro and the Kinship Activitiesof Kidong Lineage of Sŏngsan Yŏsduring Chosŏ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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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김산[오늘날 김천]에는 창녕 조씨, 연일 정씨, 벽진 이씨, 화순 최씨, 성산 여씨 등 이른바 ‘5대 반족(班族)’이 명문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성산 여씨는 다른 종족에 비해 150년 이상 늦게 현조(顯祖)를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명문 종족으로 자리 잡았고, 서인-노론 정파가 장악한 김산 사족사회에서 남인 당색을 고수하고 지역의 남인 종족을 결집해 나갔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 종족이 명문으로 부상한 데에는 16세기 중반~17세기 초반 여응구(呂應龜)․여대로(呂大老) 부자의 정치사회적 활동, 17세기 이후 종족원의 성장과 활발한 종족 활동에 힘입은 바 컸다. 특히 남인계 명사로 활약한 여대로의 영향으로, 이들은 영남과 기호의 남인계 명사나 종족들과 활발하게 교류해 나갔다. 두 부자를 배향한 경양서원은 김산 지역 남인들의 구심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높은 위상을 발판으로 성산 여씨는 지역의 남인계 종족을 아우르는 대표 종족이자, 김산 전체를 대표하는 수위 종족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Abstract
The “five yangban lineages” including Changnyŏng Chos and Pyŏkchin Yis were the most prestigious families in Kimsan County, Kyŏngsang-do province during the Chosŏn dynasty. Among them, the Sŏngsan Yŏ lineage distinguished itself by rising to preeminent status, although it produced its apical ancestor 150 years later than the other lineages, and by steadfastly maintaining their partisan identity as Southerners in spite of the dominance of Westerner-Old Doctrine factions in the yangban society of Kimsan. Sŏngsan Yŏ could emerge as one of the prominent lineages largely owing to the politico-social activities of Yŏ Ǔng-gu (呂應龜) and Yŏ Tae-ro (呂大老) in the mid-16th and early 17th centuries and the subsequent social growth and illustrious activities of their descendants in the 17th century. Particularly under the influence of Yŏ Tae-ro, a leading member of the Southerner faction, they engaged in active interactions with the leading Southerner figures. Kyŏngyang Academy (鏡陽書院), which enshrined the ancestral tablets of Yŏ Ǔng-gu and Yŏ Tae-ro, served as a centripetal force to draw the Southerner intellectuals in Kimsan. Based on their prominent status, Sŏngsan Yŏs emerged as a representative literati lineage of Kimsan and performed the pivotal role of uniting the minority faction, the Southerners, in th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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